세계일보

검색

[사이언스프리즘] 채식이 갖는 다양한 의미

관련이슈 사이언스 프리즘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0-04-22 22:46:56 수정 : 2020-04-22 22:46:5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채식주의, 양심의 자유에 해당 / 세계 각국 차별금지법 만들어 / 공공급식의 채식선택권 보장은 / 인권보호·환경 가치 실현 정책

채식이 뜨고 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된 지 4년이 되어가는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불편한 자리에서 “저는 채식이라서”라는 말을 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나로 인해 회식장소를 정하는 데 몇 배의 노력이 투여되거나, ‘고기를 안 먹으면 건강에 지장이 있다’와 같은 화제가 밥상머리에 오를 때면, 여전히 목이 막히는 것 같다.

어느 날 채식 모임에 갔는데, 자신은 고기에 뒤섞인 야채라든가, 사이드 채소 같은 것 말고, 채소가 주인공인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원한다고 주장하는 다소 당돌한 여대생을 만났다. ‘똑같이 더치페이를 하고 밥을 먹는데’라든가, ‘상대방도 환경이나 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와 같은 부연설명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채식선택권’이 법적 권리로 인정될 수 있을까. 지난 16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공급식 및 학교급식에서의 채식선택권과 관련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가 겪은 작은 불편을 통해 윤리적 채식주의자들의 고통을 유추해볼 수 있었기에 자청하여 헌법소원의 대리인을 맡았다.

청구인들은 ‘윤리적 채식주의자’들로,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 사회생활의 어려움, 채식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함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 상당한 시간과 경제적 부담의 소요 등을 감수하고도 환경이나 동물권에 대한 신념을 지키고자 비건 또는 비건을 지향하게 된 사람들이다. ‘윤리적 채식주의’란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와 학대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인간, 동물 및 환경을 위해 비동물성 대체품의 개발 및 사용을 장려하는 삶의 철학과 신념’을 말하는데, 이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서의 취향, 라이프 스타일과는 구별된다.

우리 헌법은 제19조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경우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양심’은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양심상 결정이 어떠한 종교관·세계관 또는 그 밖의 가치체계에 기초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모든 내용의 양심상 결정이 양심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윤리적 채식주의는 양심의 자유의 범주에 충분히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2년 채식주의를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고, 올해 1월 영국에서는 ‘비건’이 윤리적 채식주의로서 철학적 신념에 해당하고, 이는 영국 평등법상 차별금지 사유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유의미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는 2018년, 뉴욕은 2019년에 병원이나 요양소에서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영양 공급이 충분한 완전 채식 식단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안이 승인되었다. 영국이나 캐나다, 이스라엘 등은 군대 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우 2017년 세계 최초로 모든 공공기관 구내식당 메뉴에 전문가에 의해 영양소 보장이 담보된 적어도 하나의 채식 옵션을 포함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공공급식’이다. 공공급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기관, 단체, 시설 등에서 공중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급식인 만큼, 이를 통해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자기결정권, 양심의 자유, 평등권과 같은 인권의 문제를 넘어, 채식은 파리협정상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들이 어떻게 그 의무를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다. 기후위기로 ‘환경’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은 학교 급식에서 ‘고기 없는 월요일’과 같은 실험을 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공공급식에서의 채식선택권 보장은 최소한의 인권보호이고, 환경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채식은 밀레니얼-z세대에게 팔리는 트렌드다. 이제는 레스토랑들도 더 많은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게 채소가 주인공이 된 메뉴 하나 정도 준비해두면 좋겠다.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