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15세기 후반 한양 중부는 불교행사 공간”

입력 : 2020-04-02 02:00:00 수정 : 2020-04-01 20:40: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특성따라 정리한 ‘문화지도’ 눈길 / 남부는 연희·동부 학문공간 분석

500여 년 전 한양의 모습을 각 구역별로 두드러지는 문화적 특성에 따라 정리한 지도가 제시돼 눈길을 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김연수씨는 학술지 ‘서울과 역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조선시대 문인 성현(1439∼1504)이 당대 풍속을 정리한 ‘용재총화’를 바탕으로 15세기 후반 ‘한양도성 문화지도’(사진) 제작을 시도했다.

김씨는 용재총화에 실린 글 중 125편을 뽑아 의례·의식, 종교, 세시·놀이·유람, 지리, 물산·음식, 관청·건물, 인물, 과거·등용 등으로 분류하고, 한양도성 내부를 중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5개 구역으로 각각의 특징을 분석했다.

중부는 도성 핵심이자 불교 행사 공간으로 설명했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세웠는데, 이 사찰은 1504년 폐사될 때까지 한양도성 중앙 랜드마크였다는 것이다.

북부는 풍류와 다문화 공간, 남부는 왕실의례와 사대부 연회 공간으로 각각 규정했다.

용재총화에는 도성 내 명승지로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 5곳이 등장하는데, 쌍계동과 청학동을 제외한 3곳이 북부에 있었다.

북부에는 진달래꽃과 가을 단풍으로 유명했던 삼청동이 있고, 경복궁 외에도 도교 의례를 거행한 소격서, 불교 암자와 사원이 있어서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했다고 분석했다.

남부는 활쏘기 명소인 청학동, 나이 든 문신을 위해 베푸는 잔치인 기로연장소 훈련원, 임금이 가끔 술과 음식을 내리는 독서당이 있었다는 점에서 연회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동부에 대해서는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과 유생에게 물품을 바치는 양현고, 교육기관인 동학(東學)이 있었고, 여유롭고 인적 왕래가 드물었다”며 ‘휴식과 학문 공간’으로 규정했다. 서부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모화관과 중국 사신이 머문 홍제원이 존재해 외교의 장으로 분류했다.

김씨는 “용재총화에는 한성부 안의 궁궐과 도성 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지만, 이 문헌이 야담이나 잡록(雜錄)쯤으로 인식돼 연구가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재총화를 보면 한양은 불교 색채를 짙게 띤 도시, 한 번 달아오르면 쉬이 잠들지 않는 밤의 도시였다”며 “한양의 공간 구분을 더 명확히 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