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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사라져 버린 꿈, 운주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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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0 22:43:09 수정 : 2020-03-20 2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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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은 왕건이 견훤 크게 물리친 곳 / 차라리 구름이 산다면 더 좋을 듯도

원래는 학교 동료 선생들 셋이 동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문제였다. 학생들까지 여행에 가세하며 움직이기는 더 어려워졌다.

화순이 고향인 전 후배는 어서 내려오라 독촉하는데 운주사행은 코로나19 뒤로 미뤄지고 말았다. 그래도 운주사 길은 포기할 수 없다. 복잡한 일정을 피하고 피해 너그러운 후배의 거듭된 양보로 드디어 길은 열렸다.

KTX로 먼저 나주까지 오라 했다. 나주, 화순이 그렇게 붙어 있었나? 나주 하면 곰탕이니 먼저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여기 곰탕은 특히 이 집에 가야 한다고 데려가는데 역시 지금껏 맛보지 못한 담백한 맛이 있다. 양이 많다고 생각 안 했는데 저녁이 될 때까지 배고픈 줄 몰랐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금성관은 옛날 요충지였던 나주목의 객관이다. 옛 자취를 만나면 언제나 기쁘다. 금성은 나주의 옛날 이름, 고려 태조가 되는 왕건이 궁예 아래에 있을 때 후백제의 견훤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궁예는 신라 왕의 서자였다. 불길한 ‘점사’로 내쳐져 승려로 컸다가 도적 양길 휘하에 들었다. 크게 세력을 얻어 마진, 태봉 등 나라를 세우고 철원 평강 일대를 중심으로 흥성했으나 미륵을 자처하며 ‘행악’을 부리다 끝내 몰락하고 말았다. 이 궁예 밑에서 세력을 얻어 일어난 이가 바로 왕건이요 금성 전투는 그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였다.

나주와 바로 옆 능주를 함께 일러 능라주라 했다. 나주목, 능주목이 나란히 있었던 것이다. 능주면 남정리에 조광조가 기묘사화를 당해 유배 왔다 사약을 받은 유허지가 남아 있다. 중종반정의 훈구세력과 갈등을 빚다 귀양 온 지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은 그의 운명은 개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한다. 바로 옆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아래 들어가 요즘 내 관심사 중 하나인 씨앗들을 얻는다.

‘드들강’(지석강) 가 경전선 철길 지나가는 곳에 영벽정(映碧亭)이 연주산을 바라보고 섰다. 후배 어렸을 때는 이 강이 바닥의 자라 같은 것들이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던가. 지금도 맑기는 하지만 계절 따라 바뀌는 산빛 어린 수면을 실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꼭 봐야 할 곳이 있다는데 바로 화순 고인돌 유적이란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데 아직 나는 고창의 고인돌밖에 알지 못한다. 과연 고인돌 단지다. 크고 작은, 높고 낮은 각양각색의 검은 고인돌들이 넓은 공원 안 아래위로 수없이 흩어져 있다. 후배 왈, 그러니 이곳은 청동기 시대 서울이었을 것이란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 옆방의 신범순 선생님이 상고사에 취미가 깊으신데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생각한다.

우리는 이름 따뜻한 화순(和順) 시내를 거쳐 도암면 운주사로 들어간다. 운주사는 ‘雲舟寺’라고도 해서 배에 얽힌 설화도 가지고 있지만 입구에는 영구산(靈龜山) ‘雲柱寺’라 썼다. 배가 아니라 기둥이라는 것인데, 차라리 ‘雲住’, 구름이 산다면 더 좋을 듯도 하다. 이곳 운주사 둘러친 천불산은 해발 100에 불과하다 하나 구름이 살 수 있을 만큼 그윽한 형세다.

‘천불천탑’이라 해서 본래는 천 개의 불상, 천 개의 탑이 운주사와 천불사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는 이 절은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알리는 수십여 불상과 탑들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로 등을 맞대고 석실에 앉아 계신 부처님 두 분과 보통 격식과는 확실히 달라 보이는 둥근 모양의 탑들, 산 위 바위에 넓게 누워 계신 부처님과 칠성탑, 칠성 바위들은 이곳이 ‘단순한’ 도량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미륵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해서 황석영 ‘장길산’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기도 한 와불 설화에, 불교의 중요한 한 가닥인 밀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도 하는데, 나는 와불 아래 새겨 놓은 일곱 개의 ‘칠성’ 바위에 유난히 관심이 간다.

제주도 탐라가 옛날에 북두칠성 숭상하는 ‘별나라’라 했다는데, 이 운주사 칠성바위는 천문에 밝았던 고조선, 고구려, 탐라의 숨결이 여기서도 함께 어른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먼 미래를 기약하는 미륵불이든 사라져버린 민족의 고대국가들이든 현세인은 늘 ‘지금’ 휘몰아치는 ‘환난’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이상적인 세상, ‘아르카디아’를 꿈꾸었던 것이리라.

날이 벌써 저물 듯한 형세다. 운주사의 못다 이룬 꿈에서 빠져나와 ‘너릿재’ 넘어 속세로 귀환해야 할 때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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