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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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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02 23:24:57 수정 : 2020-03-02 23: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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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일선의 정부·지자체·의료계 /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전 과정 적어 / 위기 종료 후 코로나백서 발간해야 / 똘똘 뭉쳐 공포 이겨낸 기록 되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국의 어린이집·유치원이 휴원하고 초·중·고·대학 개학이 미뤄졌다. 대형마트나 식당에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고 주말에는 종교 집회까지 대거 취소됐다.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방역의 기본 원칙이 된 상황이다. 우리의 일상이 멈춰선 것이다.

돌이켜보면 정부의 대응에 아쉬움이 많다. 초기에 방역 역량을 과신해 국민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데 집중한 결과 우리 사회의 방역태세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전파되고 나서는 제때 필요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섰어야 할 마스크 수급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마스크 대란을 낳은 게 대표적 사례다. 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간 엇박자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일고,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해 불필요한 논쟁을 낳은 것도 문제다.

박완규 논설실장

코로나19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어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못하는 시대에 들어섰는지 모른다. 바이러스는 변종이 많아 미리 대비하기가 어렵다. 신종 바이러스마다 발병률 등이 달라 일률적인 대처 방안이 있을 수 없다. 그럴수록 신종 바이러스가 번지면 그때그때 대처 방식과 그 결과, 문제점 등을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향후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할 경우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병원을 중심으로 퍼져 38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보건복지부는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라는 부제를 단 ‘2015 메르스 백서’를 냈다. 현장 전문가 등과의 면담과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다. 그 후 국가 방역강화 대책을 통해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감염병 대응 긴급상황실을 만들었다. 거기에 그쳤다. 방역 관련 법·제도 정비를 미루다가 지난달 국회에서 감염병예방관리법 등 ‘코로나 3법’을 부랴부랴 처리했다. 메르스 백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통절한 반성이 담긴 백서를 내야 한다. 바이러스 유입부터 위기 종료에 이르기까지 확산·방역·예방 등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 단계별 사회경제적 파장과 당국의 대응도 빠짐없이 적어야 할 것이다. 신천지 집단 감염, 중국인 입국 금지 등 논란거리에 대해선 실상과 책임 소재도 따져야 한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의료기관, 관련 기관·단체도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각자 그들의 위치에서 겪은 내용과 문제점을 담아야 한다. 반성과 재발 방지 대책에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백서를 제대로 만들려면 지금 누군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기록을 하고 있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 방역 최일선에 있었던 이들은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라도 초기 상황부터 복기해 상황별 일지를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끝나면 정부와 방역 현장에서는 코로나19 백서를 토대로 국민이 신뢰할 만한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주변국들과 협력해 국제 방역체제를 세우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 끝부분에서 “이 기록은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받아들일 수도 없기에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그 공포의 지칠 줄 모르는 무기에 대항해 완수해야만 했고 아마도 여전히 완수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증언”이라고 했다. 카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인간들의 연대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나올 코로나19 백서는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으로 하나가 돼 신종 바이러스 공포를 이겨낸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 백서를 토대로 다음에 올 신종 바이러스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우리 사회의 재난 대처 역량을 굳건히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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