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국인 오지 마세요"… '코리아 포비아' 확산에 문 닫는 나라들

입력 : 2020-03-02 06:00:00 수정 : 2020-03-02 03:39: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세계 각국 입국제한 실태 / 베트남, 하노이·호찌민 공항 착륙 거부 / 터키도 한국노선 여객기 운항 전면중단 / 필리핀 국적기도 3일부터 직항 운영 안 해 / 일주일 새 유엔회원국 3분의 1 정도 제한 / 외교부 초비상… 장·차관 총출동 수시 통화 / 항의해도 ‘보건 문제’라 말하면 속수무책 / 일각 “외교부 늑장대응이 화 키워” 비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나라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나라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른바 ‘코리아 포비아’가 전세계로 번지면서 점점 고립되는 양상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1일 오후 7시 기준 한국 출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전 세계 국가 및 지역은 81개다. 여행경보를 상향한 나라도 25개국에 이른다. 특히 여러 나라가 자국 조치의 기준으로 참고하는 미국이 대구에 대해 국무부 여행경보를 최고 4단계인 ‘여행금지’로 격상했다.

 

미국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책임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이탈리아의 특정지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최고인 4단계로 격상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우리는 미국인들이 코로나19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들 지역으로 여행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 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데다 대구에서 워싱턴주로 귀국한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아 감염 확산 우려가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여성은 지난달 7∼23일 대구를 방문한 뒤 지난달 27일 양성으로 확진됐다.

 

미국은 한국 전체에 대한 여행 경보를 3단계 ‘여행 재고’로 유지했지만, 미국행 여행객에 대한 의료검사 강화를 요구하면서 출국 전 심사가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이탈리아 일부 지역 경보도 4단계로 올렸고, 최근 2주 이내에 이란을 방문한 사람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통화하고 양국 간 교류를 불필요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과도한 조치를 자제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강 장관은 비건 부장관에게 국내에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지만, 주로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높은 수준의 검진 역량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전수조사하고, 그 결과를 신속·투명하게 공유하면서 전방위적 방역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유엔 회원국 수(193개국) 기준으로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가가 한국발 입국제한을 강화한 만큼 이 같은 흐름을 막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한국과의 특수한 친분을 과시하는 국가들에서도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베트남 당국은 지난달 29일 밤부터 한국발 호찌민행 여객기의 착륙지를 호찌민 공항에서 차량으로 4시간가량 떨어진 껀터시 껀터공항으로 변경하라고 한국 항공사들에 통보했다. 전날엔 아시아나 항공기의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착륙을 불허했다. 터키도 우리나라를 오가는 모든 여객기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2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인천발 로스앤젤레스(LA)행 KE017편 탑승구 앞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탑승 승객의 발열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까운 나라마저 “한국인 오지 마세요”

 

정부가 세계 각국의 과도한 한국발 입국제한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가까운 국가들조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한국에 빗장을 거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1일 오후 7시 기준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격리를 강화하는 등 입국 절차를 시행하는 국가 및 지역은 총 81곳이다. 국내 확진자 급증으로 국민들의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립감까지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늑장 대응으로 국가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형제의 나라’마저 문 닫아

 

정부가 박차를 가하던 신남방정책 대상국 중에서도 핵심 파트너인 베트남은 전날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이어 이날 호찌민 공항에서도 한국발 항공기의 착륙을 불허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저녁 팜 빙 밍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고 강한 유감을 표명한 뒤 잇따라 일어난 일이다. 국내 항공사들은 이틀째 빈 비행기를 띄워 현지에 발 묶인 승객을 태워오고 있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뉴스1

‘형제의 나라’ 터키도 한국발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터키가 이날 0시부터 한국과 이탈리아, 이라크를 오가는 모든 여객기의 운항을 중단하면서 오전 2시20분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할 예정이던 터키항공편이 취소됐다. 이 항공기를 탈 예정이었던 우리 국민 231명의 발이 묶였다. 항공편의 취소가 비행 직전에 알려지며 승객 상당수가 이미 CIQ(세관·출입국·검역) 구역에 들어선 상태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필리핀 국적 세부퍼시픽항공은 3일부터 한국∼필리핀 직항 노선 운항을 임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많은 나라의 한국행 항공편이 취소되고 있다. 중국 각지에서도 우리 국민의 격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발 입국제한국은 국내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외교부가 입국제한 지역을 공식 집계·공지하기 시작한 지난달 23일 13곳에 불과했지만 일주일 사이에 유엔 회원국(193개)의 3분의 1을 넘었다. 초기에는 섬나라와 보건 역량이 취약한 일부 국가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은 물론 한국과의 인적 교류와 교역이 많은 국가도 빠르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자국민의 여행 경보도 계속 상향되는 추세다. 동맹인 미국의 대구 여행 금지 경보 조치에 이어 러시아는 전세기를 띄워 한국인을 포함한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귀국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은 감염증 위험 정보상 레벨2(불요불급한 방문중지)가 발령된 대구광역시와 경북 청도군 외의 한국 전역에 대해 지난달 29일부터 방문주의를 촉구하는 레벨1을 발령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뉴스1

◆외교 노력 다하지만… 동시다발 조치에 속수무책

 

외교부는 초비상 상태다. 사전 통보 없는 조치에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강 장관, 조세영 1차관 등 고위당국자들이 총출동해 미국과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의 외교부 장·차관 인사와 통화를 하고 있다. 확진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확진자 수가 많지만 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는 적다는 점 등을 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일본 대사 등 외교부 본부로 초치된 대사도 벌써 여럿이다. 이날도 응우옌 부 뚜 주한 베트남 대사가 초치됐다. 실무진은 여기저기에서 격리된 한국인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자구책을 교섭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항의한다고 해도 이들 국가가 외교 문제가 아닌 보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 대응하기가 어렵다.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매체가 이미 한국의 ‘자제해달라’는 메시지에 이 같은 논리로 반박한 바 있다. 동시다발적인 입국 제한·금지를 처음 경험하다 보니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자성도 나온다. 외교부는 향후 입국 제한 조치국이 더 늘어날 것인지에 대해선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흐름이 시작된 만큼 국가들이 조치를 시행하는 데 외교적 부담을 덜 느낀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홍주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김민서 기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