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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추사 김정희와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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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1 23:40:31 수정 : 2020-02-21 23: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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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과지초당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栢之後凋).’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에서도 대표적인 명문으로 꼽히는 구절이다. 이 글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歲寒圖)’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김정희는 유배 시절에도 자신을 잊지 않은 제자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를 그려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것이리라.

세한도의 이미지 때문에 추사의 유적지가 제주도에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좀더 학구적인 사람들은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 고택과 관련 유적지를 탐방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천과 서울에도 추사 유적지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현재 과천시 주암동에 소재한 ‘과지초당(瓜地草堂)’은 추사의 부친 김노경이 1824년에 마련한 별장으로, 추사는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부친의 묘소를 이 근처에 안치하고 3년상을 치렀다. 제주 및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부터 185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4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말년을 보냈다. 2007년 과천시에서 과지초당을 복원하면서 추사가 직접 물을 길어 먹었다는 독으로 만든 우물인 ‘독우물’도 재현하였다. 2013년에는 과지초당 옆에 추사기념박물관을 조성하여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에서 조금 서쪽으로 가면 추사 선생 집터가 있다. 원래 이곳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이집을 영조의 사위인 김한신이 물려받았다. 김한신은 추사의 증조부가 되는 인물로서, 추사는 서울에 있을 때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 강남 봉은사에는 불교 경판을 보관한 건물인 ‘판전’이 있는데, ‘板殿’이라는 현판 글씨가 추사의 작품이다. 판전 두 글자 옆에는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 하여 ‘71세인 과천 사람이 병중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판전은 추사의 마지막 작품으로, 최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의 모습을 느껴볼 수가 있다.

신병주 건국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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