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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연회에 온 듯 … 대한제국 황실 식탁도 프랑스 영향 강했다

입력 : 2020-02-18 03:00:00 수정 : 2020-02-17 20: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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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도록 ‘서양식 생활유물’ 최근 발간 / 서양식기 168건중 138건 프랑스제 / 대한제국 문양 새겨져 주문 생산된 듯 / 佛 대통령이 고종에 백자 꽃병 선물도 / 프랑스요리 서양음식 표준으로 확산 / 대한제국도 서양식 연회때 도입한 셈 / 낯선 문화에도 서양처럼 능숙하게 진행 / 궁중역관 도움… 유럽식 조리법따라 / 이사벨라 비숍 등 당시 외국인들 호평

‘미식가들의 성서’로까지 불리는 ‘미슐랭가이드’를 만들어낸 나라답게 프랑스의 요리는 예나 지금이나 식탁문화의 강자다. 특히 고급 요리에서 위세가 막강한데, 19세기 말에 이미 유럽에서 표준처럼 여겨져 세계 각국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에 문호를 연 지 얼마 안 된 대한제국의 식탁에도 프랑스 요리의 영향력은 강했다. 1905년 8월부터 1년간 황실의 외빈 접대 업무를 담당한 독일 여성 엠마 크뢰벨은 “황궁의 식사예절은 유럽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국립고궁박물관(고박)이 최근 발간한 소장품 도록 ‘서양식 생활유물’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서양 국가에서 들여온 168건의 식기 중 138건이 프랑스 제품이다. 익숙지 않은 문화였을 것이나 대한제국의 서양식 식사는 “마치 유럽의 연회에 온 듯하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 문장 새겨진 프랑스 식기

고박 소장의 서양식 식기는 일본에서 만든 것이 1450건으로 가장 많지만 서구 국가만 놓고 보면 프랑스가 영국(27건), 오스트리아(2건), 미국(1건)보다 훨씬 많다. 프랑스 식기는 필리뷔, 아돌프 아쉬 앤 컴퍼니, 지앙, 알뤼오, 아빌랑 5개 회사 제품이다. 고박은 “필리뷔, 지앙, 아빌랑은 현재까지도 좋은 품질의 도자기를 생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서 깊은 회사”라고 소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프랑스 식기 대부분의 제작사인 필리뷔다. 프랑스 중북부의 소도시 므엉-슈흐-이에브르에 위치한 회사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1823년, 1867년, 1878년, 1889년,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 상을 받았다.

서양과의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에는 서양식 연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서양식 식기를 수입해 활용했는데, 서양 국가 중에는 프랑스의 것이 가장 많다. 사진은 프랑스 필리뷔사에서 제작해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한 식기 세트.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필리뷔 도자 식기의 대부분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황실에서 주문해서 생산된 제품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시다. 필리뷔 측에 한국과의 거래를 보여주는 명시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주문으로 문장(紋章·국가 혹은 단체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지)을 넣어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오얏꽃이 장식된 도자기 역시 주문받아 생산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박 신재근 학예연구사는 “소장품 중 시기가 이른 19세기의 것이 프랑스 제품”이라며 “프랑스 식기가 주로 사용되다 일본에서 만든 서양식 식기로 대체되어 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식기는 아니지만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1878년에 만든 백자 꽃병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대한제국 고종 황제에게 선물한 꽃병.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대한제국의 ‘놀라운’(!) 서양식 연회

상류층의 연회에서 프랑스식 요리는 19세기 말 이후 국제적 표준에 가까웠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우리가 지금 아는 고급 요리는 굉장히 화려한 식탁으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던 루이 16세(1754∼1793년)가 창조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19세기 중·후반이 되면 프랑스 요리는 서양음식의 모델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왕가의 서양식 연회에서 프랑스 요리를 표준으로 삼았다. 서양과 접촉하게 된 대한제국 역시 자연스럽게 이런 흐름을 수용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꽤 낯선 문화였을 것임에도 대한제국이 꽤 능숙하게 서양식 연회를 소화하고 있다는 걸 증언하는 기록이 적잖이 전한다는 점이다. 바닷가재, 캐비어, 연어, 굴 등과 샴페인, 포도주가 넉넉하게 제공됐다.

 

이사벨라 비숍은 자신의 저서 ‘한국의 그 이웃나라들’에서 “저녁 식사 때는 상궁이 궁중역관의 도움을 받아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식탁을 앞장서서 주도해 나갔다”며 “저녁식사는 놀랍게도 서양식으로 차려졌다”고 전했다.

독일인 언론인 지그프리트 겐테도 “유럽에서 엄선된 다과가 나오고… 프랑스산 샴페인으로 축배를 든다…. 모든 절차는 마치 서양의 궁전처럼 진행되었다”고 소개했다. 엠마 크뢰벨은 “황실의 서양식 연회는 30명이 넘는 시종들이 준비하며, 이들은 유럽식 조리법에 따라 서양 요리를 준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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