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贊 “사랑의 매 가장 학대 방지” vs 反 “자녀 훈육권 과도 침해” [심층기획-민법 '부모 징계권' 개정 논란]

입력 : 2020-01-25 18:00:00 수정 : 2020-01-26 0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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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민법 ‘친권자는 자녀 징계 가능’ 조항/ 시민단체 “법 조항이 학대 조장 우려”/ 성인 73% “신체적인 체벌 가능” 응답/ 정부 “징계 범위서 체벌 제외 등 검토”/ 자녀 훈육 부모의 의무인데…/ 아동복지법 등 체벌·학대 처벌조항 충분/ 부모의 징계 권한 완전한 폐지는 문제/ 자녀 잘못 꾸짖어도 처벌 대상 우려도/ “체벌·학대 구분할 정부 지침 필요” 지적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전국의 모든 아동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입니다.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만 남길 뿐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서인(13)군은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맞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며 이같이 호소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임한울(9)양도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다”며 부모의 자녀 징계를 허용한 ‘민법 915조’(징계권)의 폐지를 촉구했다.

민법 915조 ‘징계권’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 법은 “친권자는 그 자식을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부모에 의한 자녀 학대를 막을 법적 제도는 이미 마련됐기 때문에 부모의 ‘징계권’을 폐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아동 권리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의 ‘아동학대’가 최다…“징계권 없애야”

20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2만4604건 중 부모가 학대행위자인 경우는 76.9%(1만8919건)에 달했다. 이는 최근 잇따라 불거진 유치원 교직원 등 대리양육자의 아동학대 사례(15.9%)보다 5배 높은 수치다.

최근 경기 여주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저녁 식사 준비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속옷만 입은 채 찬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게 하는 등 계모로부터 학대당한 A(9)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A군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훈육과 체벌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부모의 체벌 및 학대 행위를 막기 위해 ‘징계권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통해 부모의 신체적·정신적 자녀 학대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있긴 하지만, 반대로 민법에서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탓에 ‘체벌’이 법적·사회적으로 용인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다.

사단법인 두루의 김진 변호사는 “(징계권의 존재로 인해) 아동에게 징계를 가하는 것이 부모의 권리인 것처럼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며 “아동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달 20∼60대 성인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부모는 자녀를 교육적인 목적으로 징계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에 ‘체벌이 포함된다’고 인식했다는 응답자가 절반 이상(56.7%)을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체적·비신체적 체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더니, 각각 73.1%와 59.2%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사실 체벌은 아동에 대한 폭력인데, 마치 훈육의 한 종류인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징계권 조항이 계속 존재하면 잘못된 오해가 굳어질 수 있다”며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권은 부모의 당연한 권리…체벌 포함 안 해”

정부는 지난해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징계권이라는 용어가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만 오인할 수 있는 권위적인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용어변경이나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8개월여가 지났지만, 개정 방안은 물론 개정 여부조차 아직 확정되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개정 여부와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전문가 의견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수렴도 필요하기 때문에 개정 시기 자체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무부는 징계권 자체가 체벌의 근거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인정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전면 폐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징계권 개정 또는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는 폐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훈의 권오훈 대표변호사는 “체벌은 금지해야 하지만, 자녀를 훈육할 때 잘못한 부분을 꾸짖는 것 자체도 징계”라며 “민법상 징계권 조항은 부모에게 새로운 징계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당연하게 있는 징계권한을 확인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대신 (부모가) 징계를 못 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과 징계권이 상충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법무부 측에서 “징계권이란 것은 명확히 자녀의 복리를 위해서 행사돼야 한다고 민법에서 못 박고 있다”며 “서로 충돌한다고는 해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동 권리 보호’ 측면에서 사회적 논의 해야

전문가들은 양측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조화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과대학장은 “징계라는 건 상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처벌할 때 쓰는 표현인데, 호주제가 폐지된 현 가족제도에서 부모·자식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보지 않는 만큼 징계권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자녀가 올바르게 가게 하기 위한 훈육의 의무도 부모에게 있으니까, 용어를 ‘훈육권’ 등으로 바꾸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 학장은 또한 “앞으로 훈육이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데 체벌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실제 사례에서 어느 정도로 처벌할지는 법원에 융통성을 줄 필요가 있다”며 “부모들이 아이를 훈육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이 체벌이고 학대인지에 대해 (정부가) 지침을 만들고, 체벌금지를 위한 캠페인 등을 이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용어변경 수준에서 적절한 대안을 찾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크다. 고 매니저는 “민법 913조(친권자는 자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다고 규정)를 통해 부모의 자녀 훈육 의무는 이미 규정돼 있다”며 “징계권을 놔둠으로써 얻는 공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징계권이 삭제됐다고 하는 것 자체가 교육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아동 권리적인 측면으로 개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팔 등 56개국 법으로 아동 체벌 전면 금지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체벌을 ‘훈육’이 아닌 ‘폭력’으로 보고 이를 금지하는 국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핀란드, 남수단 등 전 세계 56개 국가에서 아동에 대한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들 국가에서는 가정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학교, 소년원 등 아동과 관련된 모든 장소에서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다.

 

네팔에서는 2018년 아동법(The Act relating to Children 2018)이 통과되면서 18세 미만의 아동을 상대로 한 모든 형태의 체벌이 금지됐다. 이 법에 따라 아동에게 어떤 장소에서든 신체적·정신적인 처벌 또는 경멸적인 행동을 가할 경우 최대 1년의 징역에 최고 5만 네팔 루피(약 5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유럽 국가 중 체벌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도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부모의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처럼 민법상 부모의 ‘징계권’을 인정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지난해 초 지바현에서 10세 여아가 아버지의 상습 학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 등이 의회를 통과했고, 올해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일본은 추후 징계권 조항 개정 또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동 체벌을 법적으로 전면 금지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대표적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정부는 1979년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된 이후, 그 효과와 부모의 체벌에 대한 인식에 대한 장·단기적인 조사를 진행해왔다. 법이 통과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스웨덴 부모의 약 55%가 자녀에 대한 체벌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하고 실제 93%가 자녀에게 체벌을 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2010년에 들어서는 자녀에 대한 체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비율과 실제 체벌을 가한 비율이 10%대로 낮아지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원인에는 체벌금지에 대한 법제화 이외에도 스웨덴 복지시스템의 발전, 높아진 세대 간 평등의식도 함께 언급된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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