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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듯이 미래를 알려준다고? 생활속에 침투하는 유전자검사 [심층기획 - 유전자 검사 대중화 명암]

입력 : 2020-01-18 12:00:00 수정 : 2020-01-18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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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재능 미리 엿본다’ / 해외서 DNA 검사 부모 늘어 / 인간 유전자 편집기술도 속도 / 인명경시 풍조 등 부작용 우려 / 中 2022년 6000만명 유전자 검사 전망 / 2025년까지 연 17%씩 증가… 1위 美 추격 / 美 월마트선 11만원짜리 테스트기 판매 / 기업들은 직원·가족에 검사 서비스 제공 / “반려견 질병 예측” 동물용 年2만개 불티 / 과학적 근거 낮아 ‘잠재 능력’ 참고 수준 / 외신 “결정적 근거 없이 점성술 가까워” / 유전자 가위 이용 ‘맞춤형 아기’ 가능성 / 무분별한 활용 ‘생명 윤리’ 침해 우려
홍콩에 사는 크리스는 딸 케이슬리가 태어나자 내심 ‘의사나 변호사가 됐으면’ 했다. 한 달 후 그는 프라다, 디오르 등 명품 숍이 즐비한 침사추이 쇼핑지구에 위치한 유전자검사 회사 ‘진 디스커버리’(Gene Discovery)를 찾아갔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딸의 잠재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측정 결과 케이슬리는 음악과 수학, 스포츠에 재능이 있지만, 기억력은 다소 좋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결과지를 받고 고민하던 크리스는 “의사나 변호사는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할 것”이라며 딸에게 다른 진로를 찾아주자고 아내 루이지를 설득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전자검사 업체는 홍콩 등지에서만 수십 개가 운영되고 있다. 홍콩 사례처럼 유전자검사를 통해 자녀의 재능을 측정하고 일찌감치 그에 맞는 교육계획을 수립하려는 부모들이 특히 중국에서 크게 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아이들의 운명을 점지하는 ‘현대판 점쟁이’로 불린다.

 

그러나 유전자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윤리적·제도적 논의는 매우 더뎌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8월 ‘인간 생식세포의 게놈 편집’에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유전자 편집 배아의 무분별한 연구를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는 권고에 불과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 개발자 중 한 명인 제니퍼 다우도나 교수는 “논의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금지해도 인간 배아 세포의 게놈 편집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렴해진 유전자검사…대중화까지 얼마 안 남아

 

유전자검사가 현실에 침투한 지 이미 오래다.

 

세계 최대 신용카드 회사 비자, 독일 소프트웨어회사 SAP, 스냅챗 등은 회사 복지로 직원에게 유전자검사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사내복지 차원에서 직원은 물론 직계가족에게도 유전자검사를 해주고 있다. 엔비디아 측은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면서 “직원이나 직원 가족이 암으로 고통받는다면, 회사 경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에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컬러지노믹스’(Color genomics)로 이용자의 타액을 분석한 후 암 발병 위험률을 담은 결과 보고서를 개별적으로 발송해준다.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Salesforce)도 전 직원에게 컬러지노믹스의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했고, 검사 결과 약 60명의 직원이 유전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을 알게 됐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도 유전자검사 결과를 통해 선제적으로 유방암 절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용주가 직원 및 직원의 직계가족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의료비 지출 부담을 덜기 위해 유전자 분석 서비스 가입이 느는 추세다. 컬러지노믹스의 크리스틴 문은 “미국의 개인 평균 의료 부담 비용이 매년 6~7%씩 오르고 있다”면서 “유전자검사로 조기에 병을 감지하면 의료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생존율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전자검사가 널리 퍼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 문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해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개인 유전자 해석에 드는 비용은 30억달러(약 3조47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검사업체별로 250∼575달러(29만∼67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전자검사 도구도 전문업체를 직접 찾아가지 않고 마트 등에서 생활용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다. 미국 전역의 월마트에서는 ‘23앤드미’(23andMe)의 유전자검사 테스트기를 99달러(약 1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방암·결장암·흑색종·난소암·췌장암·전립선암·위암·자궁암 등 유전성 암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려견도 유전자검사를 통해 더 오래 우리 곁에

 

반려견을 위한 유전자검사도 확산하는 추세다.

 

미국 코넬대 개 유전학 교수인 애덤 보이코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동생 라이언과 반려견의 혈통과 품종을 분석, 질병을 예측하는 개 유전자검사 업체 ‘임바크’(Embark)를 설립했다. 보이코는 “개 10마리 가운데 4마리는 유전적인 문제로 고통받는다”며 “우리는 강아지의 유전적 문제를 해결해 더 오래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신의 개가 방광 결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식단을 바꾸는 등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된다”며 “반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훗날 수의사에게 큰 비용을 지불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임바크의 반려견용 유전자 테스트 제품은 1년에 2만개씩 팔린다. 유전자 테스트 키트는 199달러로 반려견의 유전병 위험과 특성, 혈통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임바크 외에도 ‘위즈덤 패널’(Wisdom Panel), ‘DNA 마이 도그’(DNA My Dog) 등 동물용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전자검사 서비스의 바탕인 개의 게놈 지도는 2005년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학 브로드 연구소가 완성했다.

 

보이코는 임바크가 기존의 동물용 유전자검사 서비스보다 개의 건강한 삶에 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암이나 고관절 이형성증과 같은 다양한 질환을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매년 태어나는 사람보다 2배 많은 숫자의 강아지가 태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관련 산업 급성장…부작용 우려도

 

과학자들은 유전자검사에 대한 관심과 유행이 유전자 산업 규모를 더 빨리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유전자검사 시장 규모는 2018년 이미 1억4000만달러에 달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크린덴스리서치’는 이 시장 규모가 2026년 6억1120만달러로 연평균 19.4%씩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EO 인텔리전스’는 2022년 유전자검사를 하는 중국인이 6000만명으로 지난해보다 40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현재 중국의 유전자검사 시장 규모가 미국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시장의 성장률은 2025년까지 매년 17%로, 같은 기간 미국(15%)에 비해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전자검사의 정확도는 높지 않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중국의 한 유전자검사업체 본사와 분사에서 각각 유전자검사를 한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 통신은 “중국에서 유전자검사는 아이가 자료를 암기하고 스트레스를 견디며, 리더십을 보여주는 능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며 “과학이라기보다는 점성술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유전자 관련 연구소의 한 임원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전자검사가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못한다”면서 “단지 건강 위험과 고도의 경쟁사회에서 부모가 참고할 정도의 잠재적 재능 등만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질 맥비언 옥스퍼드대 유전학자는 “어느 정도 확실하다고 말하는 그런 것들(유전자검사)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전자검사가 대중화하면 질병 예측 등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인명 경시 풍조 등 부작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전자검사 등 분석기술의 발달은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는 쪽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눈, 코, 입 등 외형에서부터 유전적 형질과 잠재능력까지 인위적으로 편집해 ‘맞춤형 아기’를 생산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99달러짜리 유전자검사 키트 23앤드미 제품의 사진. 판매회사 홈페이지에 신상정보와 제품 바코드를 등록하고, 제공된 튜브에 침을 뱉은 후(30분 전부터 음료 섭취, 양치 등 금지) 잘 포장해서 발송하면 이메일 등을 통해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맞춤형 아기’에서 ‘유전자 자가 편집’까지

 

유전자검사의 대중화는 결과적으로 유전자 편집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윤리적·제도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윤리적 장벽 아래 숨죽이던 유전자 편집 분야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가져온 이는 2018년 11월 중국의 한 과학자 허젠쿠이였다. 그는 당시 유전자 편집을 통해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선언해 전 세계 과학계가 들썩였다. 태아의 게놈 지도가 규명된 지 20여년 만에 임상시험까지 이른 것이다.

 

맞춤형 아기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니스 로 홍콩중문대학교 화학병리학과 교수팀이 임산부의 혈장에서 자유롭게 순환하는 태아 DNA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세포에서만 DNA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존 상식을 깬 연구팀은 산모의 혈액 속에 있는 소량의 분열된 DNA를 분석해 태아의 게놈 지도를 상세하게 규명해냈다.

 

허젠쿠이가 수정란 유전자 편집에 사용한 기술은 ‘유전자 가위’다. ‘크리스퍼’(CRISPR-Cas9)라고 알려진 유전자 가위 활용 편집 기술은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고 교정할 수 있게 한다. 최근 미국 경제매체 CNBC는 과거 10년 바이오 의료 분야에서 이뤄진 가장 중요한 혁신이자 향후 10년 더욱 큰 진전을 위한 기틀이 될 기술 5가지 가운데 유전자 가위 기술을 첫 번째로 꼽았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 발전으로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치료할 수 있게 됐으며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를 줄 수 있다”면서 유전자 편집 기술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 유전자 편집은 아직까지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 연구원이자 물리생물학자인 조시아 제이나는 스스로를 ‘바이오 해커’라고 칭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스스로 편집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2017년에는 편집한 DNA를 자신의 체내에 주입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민간에 보급하겠다는 일념으로 유전자 편집 장비를 판매하는 ‘더 오딘’(The Odin)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개구리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키트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인간’(human)이라는 항목을 두고 향후 인간의 유전자 편집 키트를 판매하겠다는 의도도 드러내고 있다.

 

◆中, 유전자 편집 ‘맞춤 아기’ 만든 과학자에 징역형

 

“연구와 의학 윤리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한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사진)에 대한 법원의 선고문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법원은 지난해 12월 1심에서 허젠쿠이에게 불법의료행위죄로 징역 3년과 벌금 300만위안(약 5억원)을 선고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법원은 “생식 목적으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과 생식 의료활동을 불법으로 했다”면서 “무분별하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생식에 응용해 의료관리 질서를 어지럽혔으며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허젠쿠이 중국남방과기대 교수가 2018년 11월 에이즈 바이러스(HIV)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여자아이를 탄생시켰다고 밝히자 세계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당시 학자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면서 연구윤리 위반을 지적했다. 허젠쿠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윤리 심사 자료를 위조해 남자 쪽이 HIV 감염자인 부부를 모집,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

 

이를 두고 국제 사회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혁명인지 윤리적 금기 위반인지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에는 세계 7개국 18명의 생명과학 관련 학자들이 ‘향후 최소 5년간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및 착상을 전면 중단하고 이 같은 행위를 관리 감독할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내놨다. 성명서에는 “인위적으로 DNA에서 특정 질병 유발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은 ‘유전자 교정’이 아닌 ‘유전자 강화’에 해당한다”면서 “안전성이 검증될 때까지 임상 적용이 엄격히 금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허젠쿠이의 연구를 촉매로 유전자 편집 연구는 가속화했다. 지난해 6월 네이처에 데니스 레브리코프 러시아 쿨라코프 국립산부인과 연구센터 유전자 편집 연구소장은 “(HIV 바이러스를 수용하는) CCR5 유전자를 인간 배아에 편집해 HIV 양성반응을 보이는 여성에게 착상시키는 실험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허젠쿠이 교수가 남성이 HIV 양성인 경우를 실험했지만 에이즈는 여성이 HIV 보균자일 경우 유전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새로운 임상시험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비난에도 아직 구속력 있는 제재 수단이 없는 만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무분별한 활용은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 나라는 현재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이며, 지침으로 금지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허젠쿠이 사례를 통해 법 규제를 검토 중이다. 일본은 최근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 금지 법안을 내놨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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