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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많은 젊은 가슴을 피로 물들게 하는지”… 이한열 열사 동아리 ‘만화사랑’ 날적이 기증

입력 : 2020-01-12 20:14:43 수정 : 2020-01-12 20: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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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왜 수많은 젊은 가슴을 피로 물들게 하는지, 왜 우리는 슬퍼하고 통곡하는 많은 어머니를 가져야만 하는지, (이한열이) 지금이라도 당장 저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설 것만 같은데, 지금은 볼 수조차 없다니….”

 

1987년 6월9일 연세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고(故) 이한열 열사가 군사정권 규탄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후, 그가 활동한 학내 동아리 ‘만화사랑’ 날적이에 적힌 글이다. 날적이는 1980∼90년대 대학가 동아리방에 오가는 학생들이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적고 나누는 익명의 공용 일기장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만화사랑이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약 10년간의 기록이 담긴 날적이 30여권을 이한열기념관에 기증했다고 12일 밝혔다. 만화사랑 측은 날적이를 계속 동아리 방에 보관해왔고 공간이 부족해 기증할 곳을 찾던 중 지난해 11월 기념사업회에 기증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연세대 동아리 ‘만화사랑’으로부터 기증받은 날적이 30여권.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날적이에는 이 열사의 비극을 목격한 동아리 동료들의 슬픔과 시국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이한열 열사는 동아리 활동 당시 혁명의 준말인 ‘혁’으로 불렸다.

1987년 6월9일 이후 날적이에는 “20년 후 삶의 덩이로 혁이가 우리에게 밀려들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반드시 꼭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봐야만 한다. 민주와 자주와 혁이를”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열사가 숨을 거둔 지 일주일 뒤인 그해 7월12일에는 “혁이 형의 장례도 다 끝났다. 어제 삼우제를 지내고 이제 49재를 기다린다. 혁이 형의 일이 작게, 아주 작게 내 마음속에 남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라며 심경을 밝힌 글이 있었다.

필체를 고려할 때 이 열사 본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발견됐다. 1987년 3월21일 날적이에는 “전방입소 공청회는 86들의 참여 속에 활발한 의견개진이 있었으나, 87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전방입소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일주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써 보았다. 아듀! 만사랑(만화사랑)”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최전방 군부대에 입소해 훈련을 받는 전방입소 교육이 있었는데, 대학가에서는 이와 관련된 반발과 논쟁이 뜨거웠다. 이 열사는 이에 대한 생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한열기념관 관계자는 “훈증과 목록화, 사진촬영, 유물등록 과정을 거친 후 연구 작업과 전시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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