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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쥬르! 디종…찬란했던 부르고뉴 공국으로 타임슬립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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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8 11:07:17 수정 : 2020-01-18 1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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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드디어 기다리던 자크마르가 모습을 드러낸다. 펄럭이는 모자에 파이프 담배를 입에문 그는 아내 자클리네와 힘을 합쳐 노트르담 종탑의 시계를 힘차게 울린다.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 사이로 퍼져나가는 장쾌한 종소리. 눈을 감으면 한때 화려했던 시절의부르고뉴 공국의 거리가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주도 디종이다.

 

#디종에 가면 부엉이를 찾아라

 

“디종? 프랑스에 그런 곳이 있어?” 지인에게 프랑스 여행 계획을 전하자 아주 의아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파리를 찾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디종은 아주 낯선 이름이다. 디종은 중세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아름다운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프랑스의 역사적인 도시. 디종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번영했던 나라가 부르고뉴 공국으로 게르만족의부르군트인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왕을 능가할 정도로 세력이 대단했다. 발루아 가문이 통치하던 1363∼1477년에는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까지 영토를 확장할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다. 그러나 백년전쟁 동안 영국의 편에 섰다가 프랑스가 승리한 뒤 합병되면서 찬란했던 시절은 막을 내린다. ‘100개의 종탑이 있는 도시’로 불리며 번영했지만 종탑은 이제 13개만 남아 있으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디종 거리를 걸으면 곳곳에서 부르고뉴 공국의 화려했던 시절을 만난다.

오스피스 드 본 박물관

파리 리옹역에서 테제베를 타면 1시간22분 만에 디종에 닿는다. 여행은 ‘부엉이 찾기’에서 시작된다. 디종역에서 출발해 도심쪽으로 걷다 보면 바닥에 박힌 삼각형 금속판이 보이는데 귀여운 부엉이가 그려져 있다. 부엉이를 따라 나선다. 표지판은 몇 m 간격으로 박혀 있고 사라졌다 나타났다 길을 안내하기에 ‘숨은 부엉이 찾기’ 놀이가 쏠쏠하다. 놓친 부엉이를 한참을 헤매다 찾아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목마른 여행자에게 한 줄기 단비 같다.

프랑스 부르고뉴 주도 디종의 명물인 리베라시옹 광장에서 들어서면 부르고뉴 대공 궁전을 만난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려한 건물은 한때 벨기에와 네덜란드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부르고뉴 공국의 찬란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부엉이를 따라가는 목적은 단 하나. 디종 노트르담 외벽에 ‘진짜 부엉이’가 조각돼 있는데 그 부엉이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 노트르담으로 인도하는 표지판이 바로 부엉이다. 10여분을 따라가니 한눈에도 고풍스러운 성당이 나타난다. 많은 여행자들이 조용히 기도 중인데 5m가량 높이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그를 쳐다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제자들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보며 절규하는 제자들의 그림도 걸려 있고 십자가 위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많은 그림과 조각들을 만나게 돼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하다.

그런데 외벽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부엉이가 보이지 않는다. 성당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생 베니뉴 성당이고 디종 노트르담은 걸어서 10분 거리란다. 아뿔싸! 부엉이에게 속은 느낌이다. 이번에는 구글맵 지도를 켜고 지름길로 노트르담을 찾아간다. 하지만 빨리 갈 수가 없다. 볼거리가 넘쳐 나서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지닌 디종의 특별한 성당 생 필리베르를 거쳐 다흐시 광장에 이르니 개선문 격인 기욤문이 서 있다. 파리 개선문에 비하면 아주 소박한데 디종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광장 동쪽으로 리베르테 거리가 이어지는데 아기자기한 예쁜 숍들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좀더 내려가면 프랑수아 후드 광장에서 자연스레 발을 멈추게 된다. 알자스풍의 건물과 분수대, 회전목마가 동화속 풍경을 만들고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분수대에 걸터앉아 피로를 씻는다.

디종 노트르담 괴물 조각상

리베르테 거리에서 포흐쥬 거리로 들어서면 드디어 디종 노트르담이 보인다. 외관이 아주 독특하다. 성당 외벽을 수많은 괴물 조각상이 둘러싸고 있는데 다른 노트르담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다. 성당 왼쪽 골목에서 웅성거림이 들려 가 보니 많은 여행자들이 몰린 그곳에 부엉이가 있다. 오른손은 금 제품을 만지거나 심장을 만지면서 반드시 왼손으로 부엉이를 쓰다듬어야 행운이 온단다. 부와 장수를 상징하는 부엉이. 전 세계 여행자들이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닳아 뭉개졌다. 하지만 쓰담쓰담 부엉이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어본다. 알고 보니 부엉이를 따라가는 투어는 구시가지 주요 관광지와 유적지 22곳을 빠짐없이 둘러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고 한다.

 

자크마르 종치기 인형

#부르고뉴 공국의 화려함에 빠지다

 

힘들게 부엉이를 찾았으면 이제 노트르담 꼭대기를 올려다보라. 디종 명물인 시계탑 종치기 인형 자크마르가 그곳에 있다. 1383년 벨기에서 들여온 자크마르는 매 시간 종을 울린다. 수백년 동안 홀로 종을 치는 자크마르가 많이 불쌍했나 보다. 디종 사람들은 그에게 신부 자클린을 선물해 둘은 힘을 합쳐 종을 치기 시작했다. 결혼한 부부에게서 탄생한 아들 자클리네는 매시각 30분마다 종을 친다. 마지막 가족은 딸 자클리네트. 1884년 설치됐는데 매시간 15분마다 종을 울린다. 자크마르 가족은 이렇게 행복한 일가를 꾸려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수백년 동안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부르고뉴 대공 궁전 야경

포흐쥬 거리를 계속 걸으면 디종의 또 다른 명물, 부르고뉴 대공 궁전에 이른다. 반원형의 드넓은 리베라시옹 광장에 서 있는 화려한 궁전은 디종이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이던 1366년에 초대 발루아 대공이 짓기 시작했다. 옛 로마 요새가 있던 곳에 지은 궁전으로 여러 대공을 거치며 재건축돼 17세기에 지금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궁전 뒤로 솟은 필립 르 봉 탑은 46m로 15세기 중반에 부르고뉴 대공의 권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세웠단다. 현재 궁전은 시청사와 디종 순수미술관으로 사용되고 되며 부르고뉴 공국 옛 영지이던 플랑드르, 네덜란드 등에서 수집한 예술품과 모네, 마네, 루벤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889년 파리 세계 만국박람회 때 에펠탑을 세운 에펠이 바로 디종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뛰어난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리베라시옹 광장은 야경도 멋지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광장의 조명은 분수의 물줄기에 환상적인 그림을 그린다. 디종역 바로 앞에 있는 보타니칼 가든은 자연과 호흡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부르고뉴의 상젤리제’ 그랑크뤼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샤토 끌로 드 부조. 한때 1만2000명의 기사단이 있던 유서 깊은 건물로 12세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즈넉한 중세의 거리 본을 거닐다

 

부르고뉴 여행의 중심 도시는 디종과 본이다. 본은 작은 시골마을이고 디종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여서 디종에 3일 정도 머물면서 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된다. 디종역에 내려 직진하면 본 중심지로 들어선다. 수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중세시대로 점프한 듯하다.

오피스 드 본

저 멀리 종탑과 기와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고성이 보인다. 갈색, 녹색, 파랑색, 금색의 유약을 입힌 타일을 모자이크처럼 붙어 아름답게 꾸몄는데 이런 지붕이 부르고뉴, 특히 본 건축물의 상징이다. 고딕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는 건물은 오스피스 드 본으로 부르고뉴의 극빈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건립됐다. 1층 홀로 들어서면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던 침대가 아직 양옆으로 길게 놓여 있다. 플랑드르의 유명한 화가 로히에르 반 데르 베이든의 ‘최후의 심판 제단화’도 눈길을 끈다.

본 노트르담 전경

본 노트르담도 꼭 들러야 할 명소다. 1140년에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1447년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오르간 연주가 한참이다. 오르간은 장엄하고 웅장하지만 눈을 감고 들으니 마음 한가득 평화를 안긴다.

 

디종·본=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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