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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선으로 흐르는 줄거리… 연기로 생명력 불어넣어

입력 : 2020-01-06 02:00:00 수정 : 2020-01-05 20: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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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리뷰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창하는 무명 가수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따뜻하게 그린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중 한 장면.                     쇼노트 제공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우리나라에선 낯선 ‘드랙퀸’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드랙퀸’은 주어진 성별과 다른 복장을 하는 ‘크로스 드레싱’을 일컫는 ‘드래그(drag)’와 ‘퀸(queen)’을 합친 단어. 그 기원은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어 남자가 여자 역할을 해야 했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이 작품은 그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너훈아’ 등 이미테이션 가수들처럼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여성 유명 가수 히트곡으로 무대를 꾸며야 했던 무명배우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주인공은 플로리다 작은 극장식 술집에서 인기 없는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으로 삶을 이어가는 무명배우 겸 가수 케이시. 고교 연극반에서 시작된 배우 인생이이지만 대단한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 월세가 밀려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데 사랑하는 아내는 임신까지 한다. 급기야 술집에서도 잘리는데 새로 시작된 드랙퀸 쇼에 빈자리가 생기면서 원래 상남자였던 케이시는 호구지책으로 울며 겨자를 먹듯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쉼 없이 두 시간 동안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나 섬세한 설정의 등장 인물이 만들어내는 따뜻함과 공감·연민의 정서는 특별하다. 케이시는 비록 여장한 게 부끄럽지만 자신의 연기와 노래에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을 만나면서 무대에 서는 보람을 찾는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지만 아내에겐 이를 계속 숨기다 들통나 위기가 찾아온다. 다행히 무대에 선 케이시의 빛나는 모습에 아내 역시 “나보다 더 예쁘잖아”라고 투덜대며 이를 받아들인다. 또 다른 주인공인 드랙퀸 고참 트레이시는 케이시를 제 몫 하는 가수이자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시킨다. 트레이시 품에 안긴 케이시의 쌍둥이가 젖을 찾는 마지막 장면은 혈연 중심 가족주의에 대한 유쾌한 반란으로 평가받았던 우리 영화 ‘가족의 탄생’을 연상시킨다.    

 

일직선으로 달려나가는 줄거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지난 2일 공연에선 이전까지 여장한 적 없던 배우 강영석, 백석광이 각각 케이시와 스테이시 역을 맡아 경탄스러운 변신을 보여줬다. 강영석은 케이시가 드랙퀸으로서 어색함을 벗어던지고 무대에 몰입하면서 한 인간이자 가장으로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드랙퀸이 주인공인 작품으로는 조승우·오만석·조정석의 뮤지컬 ‘헤드윅’이 독보적인데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새로운 스타 계보 탄생을 예고했다.

 

무용수에서 출발해 독립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연극배우가 된 백석광의 연기도 돋보였다. 케이시의 성장을 이끄는 스테이시 역을 맡아 사려 깊으면서도 우아한 여장 연기를 무대 한가득 풀어놓는다. 

 

원작은 미국 극작가 매슈 로페즈 작품이다. 2014년 초연 성공 후 미국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인기 시트콤 ‘빅뱅이론’의 쉘든으로 잘 알려진 배우 짐 파슨스가 트레이시로 출연하는 영화가 만들어질 계획이다. 그런데도 낯선 작품이 위화감 없이 성공적으로 국내 초연하게 된 건 신유청 연출 힘이 크다. 지난해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등으로 평단의 격찬을 받으며 여러 상을 탔던 신유청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찬 따뜻한 작품을 만들었다.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2월 16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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