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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직격탄 맞은 외국인 노동자들 이직도 못해 ‘이중고’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입력 : 2020-01-05 08:00:00 수정 : 2020-08-05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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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주노동 권리 보장 목소리 커져 / 고용수요 큰 건설·제조·광업 부진 원인 / 2019년 취업자 수 86만명… 2.4%↓ 최대 하락 / 실업자 수도 12.3% 늘어 5만명 첫 돌파 / 소득은 늘어 51% 월 200만~300만원 벌어 / 현행 고용허가제, 고용주가 재계약 정해 / 폐업·임금체불 등 사유 있어야 이직 가능 / “정부 관리하는 노동허가제 도입” 요구

한 중소기업 대표는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최근 고향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론 입맛이 썼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축하할 일이지만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면서 국내 외국인 노동자 중 월급 200만∼300만원을 받는 근로자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300만원 이상 받는 근로자도 급증했다. 반면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외국인 취업자 수는 감소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가 자신들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오르고 고용 줄어

작년 외국인 취업자 수가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통계청의 ‘2019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수는 5월 기준 86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2만1000명(2.4%) 줄었다. 외국인 취업자 수 감소폭이 이처럼 크게 나타난 것은 2013년(4.3% 감소) 이래 6년 만이다.

외국인 실업자 수는 6000명(12.3%) 늘어나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5만명을 기록했다. 전체 상주 외국인 수는 2만2000명(1.7%) 늘어난 132만3000명이었지만, 경제활동인구는 오히려 1만6000명(1.7%) 감소한 91만4000명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쓰는 건설업과 광·제조업 업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별 취업자 수를 보면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취업자는 3000명(5.3%) 늘었지만, 건설업은 1만6000명(14.2%), 광·제조업은 6000명(1.4%) 각각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이들 업종은 외국인 노동자 사용 비중이 높지만 최근 들어 업황이 부진한 상황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외국인 취업 비중이 높은 광·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주로 취업자 감소가 이뤄졌다”며 “두 업종 모두 최근 좋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이 감소했지만 임금 수준은 나아졌다. 외국인 노동자 전체 취업자 중 51.3%인 42만3800명이 월평균 200만∼3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사돼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300만원 이상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는 전체의 16.3%(13만4400명)로 전년 대비 25.5% 증가했다. 월급이 200만원 미만인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32.4%로 전년(37.9%) 대비 5.5%포인트 줄었다.

입국 전과 비교하면 한국에 들어온 뒤 보수가 더 많다는 응답이 78.8%였다. 반대의 경우는 6.4%에 그쳤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24% 이상은 국내외 송금에 사용됐다. 해외 송금을 하는 외국인의 연간 송금 횟수는 연 12회 이상이 가장 많았다.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를”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근로계약 해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재고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노동자가 일터를 쉽게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관리·감독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을 고용하려는 사업자가 직종과 목적 등을 제시하면 정부가 타당성을 검토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외국 인력 도입 정책이다. 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고용허가를 받은 사용자는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노동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와 고용 계약을 체결한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외국인근로자의 체계적인 도입·관리를 통해 중소기업의 인력난 완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족쇄로 인식하고 있다. 3년 이내 최대 세 차례까지만 회사를 옮길 수 있고 이직을 하려면 사업주의 허가를 받거나 폐업, 임금체불 등의 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 조항을 악용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난 8월 고용허가제 도입 15주년을 맞아 집회를 열고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이주공동행동 등은 “현행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사업장을 선택할 수 없고 사업장 이동도 금지돼 있다”며 “위험한 작업 환경과 고용주의 폭력에도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업주에게 모든 권한이 일임돼 있는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자에게도 권리를 주는 노동허가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재·체불… 이주노동자 그치지 않는 ‘눈물’

 

예전보다 개선되고는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위험 속에서 일하거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9일 전북 완주군의 한 자동차 휠 제조공장에서 중국 국적의 A(45)씨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리프트에 몸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지난달부터 단기 계약직으로 이 공장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튿날 해당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사망사고는 예고된 인재”라며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전날 숨진 외국인 노동자는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현장 지휘자 없이 수리 업무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며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아 벌어진 참사”라고 말했다. 또 “사고 당시 현장에는 언어가 통하는 관리자가 없었다”며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험 업무에 투입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사흘 앞둔 지난 15일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 등을 촉구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은 문화제에서 “올해는 어느 때보다 안타까운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 소식이 많았다”며 목동 빗물 저류시설, 경북 영덕 오징어 가공업체, 대전 금속제조공장, 평택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잇따랐다고 지적했다. 이주공동행동 등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2016년 71명에서 2018년 136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작년 1∼6월 산업재해 사망자 중 약 10%가 이주노동자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은 유엔 이주노동자권리협약 채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한국은 아직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은 한국에 필요하지만, 우리의 존재와 권리는 부정당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 대신 종이쿠폰을 지급한 업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영천의 한 파견업체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 대신 가짜 돈인 ‘종이 쿠폰’을 주는 방식으로 임금을 체불했다”며 사업주의 구속을 촉구했다. 연대회의에 따르면 사업주는 피해를 본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족 초청 비자로 국내에서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지난해부터 “나중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며 종이 쿠폰을 주고 최소한의 비용만 현금으로 지급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대구고용노동청은 사업주 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한 최근 2년간 근무한 외국인 노동자는 200여명으로 추정되며 피해액은 4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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