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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 돈 대신 ‘종이 쿠폰’ 준 사업주… “피해액만 수억 원”

입력 : 2019-12-11 10:34:43 수정 : 2019-12-11 10: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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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리면 신고” 불법체류자인 점 악용해 협박 일삼아

 

경북 영천의 한 용역업체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2년간 임금 수천만원을 ‘종이 쿠폰’으로 줬다는 폭로가 나왔다. 피해자는 200명 가량으로 피해액은 3∼4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업주는 피해자들이 불법체류 중인 점을 악용해 ‘사실을 알리면 피해자 가족들에게 해가 갈 수 있다’는 협박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노동자의 가족 A씨는 베트남에서 온 장인, 장모가 용역 업체에서 종이 쿠폰으로 임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양파‧마늘밭 등 채소농장에 파견돼 일했다. 두 사람이 약 3년간 받지 못한 임금만 약 15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 연대회의 제공

 

A씨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작년에 집사람 통해서 임금을 돈으로 안 받고 쿠폰으로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종이 쿠폰을 사업주한테 주면 돈으로 다시 되돌려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쿠폰을 줬는데도) 돈을 받지 못하고 (사업주가) 그냥 장부에 기록만 하더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는 사업주가 임금을 줄 의지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용역 업체 사장한테 돈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 용역 업체 사장님이 자기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이 50만 원밖에 없다더라”며 “그 말을 듣고 이분은 분명히 (체불 임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장인, 장모께서 왜 지금까지 1500만원, 1600만원 되는 돈을 지금까지 못 받고 종이 쿠폰만 받으면서 왜 일을 계속 나가셨나 (궁금했다)”며 “(장인, 장모가) 다른 분들은 한 2700, 많은 사람은 3000만원 못 받았는데 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는 1500만원밖에 안 되는데 이걸 굳이 얘기할 필요 있느냐고 하더라”라고 답답해했다.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농장에서 일을 했던 A씨의 장인, 장모는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도 했다.

 

해당 용역 업체에서 종이 쿠폰으로 임금을 받은 피해자 규모는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제보를 받고 해당 사건을 조사했던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최선희 집행위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전체 피해자 규모는 200명 정도이며 피해액은 한 3∼4억대 정도 수준으로 보고있다”며 “(용역업체 사장은) 농장 농사가 망해서 자기도 돈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농장주들로부터는 거의 돈을 다 받은 거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농장에 노동자들을 보내기 전 현금을 미리 받은 경우도 있어 용역업체 사장도 피해자라는 식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최 위원장은 심지어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는 돈을 받을 거라 믿고 있는 한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있는 걸 확인했다”며 “(용역업체 사장이) ‘너희들이 신고하면 벌금을 받거나 잡혀갈 수도 있다. 너희들 딸과 사위한테도 문제가 생긴다’는 두려운 마음을 계속 심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땅도 많고 집도 여러 채 있고 차도 여러 대 있기 때문에 너희들 월급 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심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줄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피해자들에게) 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심지어 피해 사실을 숨기는 피해자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대회의는 지난 10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사업주를 임금체불로 고소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주의 구속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은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한국인이 기피하는 노동을 주로 한다. 사업주 지불능력 문제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는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는 인식 탓에 법은 지키지 않는 사업주가 많은데, 이 업체는 그중 가장 악질적”이라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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