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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취 좇아 … 잊혀진 나를 만나다

입력 : 2019-11-06 05:00:00 수정 : 2019-11-05 21: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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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 안성수 단장이 만든 마지막 무대 / 국악과 현대무용의 조화 돋보여
춤과 음악의 완벽한 합일을 추구한 안무가 안성수, 작곡가 라예송의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11월에 임기 3년을 마치는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장은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국내 초연에서 지난 3년간 단원들과 함께 한국 현대무용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왔는지 보여줬다. 서울 예술의전당 초연에 앞서 지난달 4∼5일 브라질 상파울루 시립극장에서 세계 초연한 이 작품을 안 단장은 “가장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라며 “삶의 흔적에 대한 작품이며, 무용수들과 3년간 함께한 흔적 그 자체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뉴욕 유학생활 중 굳은 몸 때문에 등록한 스트레칭 수업에서 춤의 세계에 빠진 안 단장은 줄리아드 대학에서 현대무용과 발레를 정식으로 배웠다. 1991년 ‘안성수픽업그룹’을 뉴욕에서 만들어 현지에서 주목받다가 홀연히 1998년 귀국해 ‘안성수픽업그룹’을 재창단했다. 이후 자신의 ‘볼레로’로 2005년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작품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 등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특징을 분리·해체·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은 안성수는 그 결과 2016년 말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당시 “한국의 미를 무용수를 통해 작품으로 풀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안 단장은 좀처럼 현대무용 무대를 찾지 않던 대중을 객석에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관객에게 현대무용의 가치와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마련한 ‘오픈 업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일반인 대상 무용 클래스 ‘무용학교’와 연습실을 개방해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오픈 리허설’, 공연의 춤곡을 들려주는 ‘무곡 콘서트’, 현대무용의 역사와 주요 인물·작품을 소개하는 특강 ‘춤추는 강의실’ 등으로 현대무용단 팬층을 두껍게 했다.

지난 3일 공연은 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 안 단장이 만든 마지막 무대였다. 이방인으로서 뉴욕에서 뒤늦게 무용에 발들인 후 귀국해 한국무용 활로를 찾아온 안무가 염원대로 온통 검은 밤바다를 연상시키는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일렁이는 파도에 흔들리는 돌, 모래같이 때로는 정적으로, 때로는 숨가쁘게 춤추며 잊힌 기억의 흔적을 소환했다.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젊은 작곡가 라예송의 음악이었다. 그는 3년 전 안 단장이 예술감독으로서 임기를 시작하며 첫 작품 ‘제전악-장미의 잔상’ 음악을 과감히 맡긴 신예 음악가. 이때 안 단장은 “춤을 보다가 지겨우면 눈 감고 음악만 들어도 됩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지난달 음악만 먼저 선보인 무곡콘서트에서 라예송 음악감독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국악기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를 음악에 담고자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무대에서도 라예송은 대표적 전통악기 음률 특성을 잘 살린 음악으로 국악이 현대무용과 얼마나 좋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줬다. 5인의 악사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자리 잡고 가야금·피리·대금·해금·장구·꽹과리·정주를 연주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극의 한 부분이었다. ‘춤과 음악의 완벽한 합일을 추구한다’는 무용단 포부는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어떠한 꾸밈도 없이 수직조명만 빛을 비춘 무대에선 무용수들이 어둠 속에서 등장했다 사라지며 ‘자신 안에 있는 기억의 흔적을 좇아 과거의 자신을 만남으로써 치유를 얻는다’는 주제를 구현했다. 지난 3년간 안 단장과 호흡 맞춰온 무용단원들은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순수예술 중에서도 유독 대중에게 문턱이 높은 분야가 현대무용과 국악일 텐데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두 생경한 분야의 조합임에도 누구나 몰입할 무대를 객석에 선사했다. “관객을 불러모으겠다”던 안 단장 바람 그대로일 테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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