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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엉터리 의사 동행 이송 중 악화 다반사… 당국 현황파악도 못해

입력 : 2019-10-29 06:00:00 수정 : 2019-10-29 01: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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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환자 이송 '무법지대' / 정부, 규제 장치 전무 ‘관리 사각’ / 환자가족 요청오면 무조건 ‘콜’ 응답 / 일부 직원들은 관광하고 돌아오기도 / 일반 서비스업으로 신고만 하면 OK / 진입장벽 없어 자격미달 업체 난립 / 통계 없다보니 정책 보완도 못해 / 관련 부처 “내 소관 아니다” 발뺌 / 국내이송업체 관리는 엄격 ‘대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해외 환자를 이송하러 나가선 그중 일부가 관광하고 돌아오는 곳이 허다합니다. 한국 의사면허가 해외에서 통하지 않다보니 의사 가운만 입고 사칭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의학용어 때문에 현지 의사랑 대화가 안 돼요. 환자 상태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비행기로 이송하는 겁니다. 부랴부랴 의사를 구해 인턴 의사를 데려가기도 해요. 이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하거나 치명적 손상을 입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해외환자이송업체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환자 가족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업체 관계자들의 백태를 고발했다. 1차적으로는 해외에서 사고를 당한 내국인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업체의 비양심적 행태가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들의 시장을 무법지대로 만든 당국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환자이송업체들은 보건복지부의 ‘응급환자이송법’에 따라 시설·인력·장비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규제를 받지만, 해외환자이송업과 관련해선 현재 법·제도적 규제가 전무하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장비조차 제대로 구비하지 않아 그때그때 빌려 쓰는 곳도 있다”며 “손에 익지 않은 장비를 중환자에게 사용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환자 가족의 ‘콜’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하는 업체도 있다”며 “민항기 이송만 취급해본 업체가 현지에서 에어앰뷸런스(전용기)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되면 200만∼300만원가량 수수료를 챙긴 뒤 다른 업체에 떠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계부처 “우리 소관 아냐”

해외환자이송업을 하려면 현재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일반서비스업 신고를 하면 된다. 아무나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다.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의원실이 외교부와 복지부 등에 문의한 결과 관련 부처 모두 “해외환자이송업은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외교부는 “영사조력을 할 뿐 이송을 직접 시행하지는 않는다”고 답했고, 복지부는 “응급환자이송업은 허가받은 영업지역에서만 수행해야 하는데 해외 환자 이송은 허가지역을 벗어난 것으로 타업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또 “해외 환자가 국내 의료진을 고용해 이송을 요청하는 것은 환자의 필요에 따른 사적 계약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국토교통부도 항공법은 항행의 안전을 규정한 것으로 의료행위는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해외 사건·사고에 대한 영사조력은 외교부, 항공기를 이용한 환자이송은 국토부, 입국 후 국내 병원 이송은 복지부로 역할이 나뉜 상태에서 이 모든 영역을 오가는 해외환자이송업체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해외에서 뇌출혈, 익수 등 치명적 사고가 발생한 환자는 본국 이송을 애타게 희망한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데다 비용 부담과 의료적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태국의 경우 외국인 중환자에게 각각 1일 평균 약 400만원, 500만원을 청구한다. 고비용에 오진이 많고 감염관리가 취약해 환자 상태가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 없고 비용도 천차만별

주무부처가 없다보니 이송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업체별 서비스 질과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해외 환자 이송은 민항기의 ‘스트레처(응급환자를 눕혀 이송할 수 있는 기내 의료용 침대) 서비스’와 비행기 전체를 환자 맞춤형 병원으로 운영하는 전용기 서비스가 있다. 민항기 이용 시 항공료는 본인·의료진·보호자를 포함해 평균 400여만원, 전용기는 약 1억원이 소요된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이송에 투입된 전세기 비용은 4억4800만원에 달했다.

 

각 항공사가 이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해외 환자 이송이 특별한 사건의 주인공에게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해외 여행객이 늘면서 비행기를 통해 입국한 응급환자는 연간 수천명에 달한다. 대한항공의 해외 발생 환자 이송 건은 연간 1000건, 아시아나항공은 201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82건, 에어서울은 2건이었다. 하루 평균 3명꼴이다. 이는 각 항공사가 자체 집계한 내역으로, 이들 가운데 해외환자이송업체를 이용한 환자 수와 전용기를 동원한 사례는 알 수 없다. 해외 발생 환자의 주요 질환과 사고 유형, 여행자보험 가입 여부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통계가 없다보니 해외 여행객의 안전을 위한 정책 서비스의 보완·발굴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이송은 ‘촘촘’, 해외 이송은 ‘무법지대’

전문가들은 ‘하늘 위’에선 ‘땅 위’보다 세심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도에 따라 산소 밀도, 기압 등 물리적 특성이 변하기 때문이다. 국내 이송 때는 정부의 관리·감독에 따라 어느 업체를 이용하든지 간에 큰 편차 없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복지부의 응급환자이송법은 이송사업자의 자격을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 ‘닥터 헬기’의 경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더 꼼꼼한 자격 제한을 둔다. 구급차와 닥터헬기는 ‘출동 및 처치기록지’도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더 높은 고도에서 오랜 비행을 하는 항공이송에 대한 규정은 국내 그 어느 법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처치기록지 등을 의무적으로 작성하지 않아 환자 가족이 책임 여부를 다투기도 어렵다. 일부는 외교부·복지부·국토부가 공동부령으로 함께 관리하거나 복지부 또는 국토부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일각에선 별도 기관이 인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향후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김호중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응급의학)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업체도 있지만 환자 이송은 의료 영역인 만큼 업체들이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제도권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며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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