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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에도 이어진 신분의 차별… 고대인들이 상상한 죽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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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21 16:00:00 수정 : 2019-10-21 13: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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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 석관 위의 인물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27일까지 개최하는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에 가면 옆으로 드러누워 한 팔로 머리를 괸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자신만만한 표정에다 두툼한 뱃살과 턱살은 그가 권세와 풍요를 누린 인물이란 확신을 갖게 한다. 서기전 4세기말∼3세기 초에 제작된 석관 뚜껑에 자리잡은 조각이지만 죽음에 얽힌 슬픔이나 고통 같은 건 없다. 죽음이란 사후 세계로 떠나는 여정의 시작이며,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이 이어질 것이란 에트루리아인들의 믿음, 혹은 바람이 반영된 결과다. 

 

신라 토기에서 확인된 행렬도의 일부. 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난 1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쪽샘 44호분 출토 제사용 토기의 행렬도 무늬에서 에트루리아인들의 내세관과 비슷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흥미롭다. 이른바 ‘계세적 내세관’(繼世的 來世觀)은 동서고금에 예외가 없었고 시공간의 다름이 너무 커 서로의 존재를 알 리 없었던 에트루리아, 신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말을 탄 사람들이 행렬을 이끌고, 무용수, 사냥꾼들이 뒤를 따르며, 그림의 주인공을 가장 크게 묘사한 행렬도는 신라의 제사 관련 유물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지만 비슷한 패턴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어 의미를 해석하는 단초가 된다. 고대 한국인들이 상상했던 죽음 이후가 이 그림 속에 있다.    

 

◆내세에서도 이어지는 신분에 따른 차별

 

토기가 제작된 5세기 무렵은 고구려가 신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던 무렵이고, 고구려의 고분벽화도 이런 관계 속에서 신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행렬도가 포함된 벽화로 장식된 고분은 내부가 화려한 저택처럼 꾸며져 있다. 시중을 드는 시종, 부하 관리, 연희 장면 등도 확인된다. 무덤의 주인을 다른 등장인물보다 크게 그려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내용을 ‘생활풍속’의 범주로 묶는다. 

 

고구려 안악3호분의 행렬도 벽화. 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대표적인 것이 ‘동수’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안악3호분이다. 방앗간, 외양간 등을 갖춘 대저택과 남녀 시종, 호위무관, 무용수 등과 함께 250여 명이 표현된 대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무덤의 주인과 그의 부인은 시종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데,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 크게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의 고분벽화는 생전에 누렸던 지위와 부를 내세에서도 향유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행렬도는) 생전의 모습 일부를 담고 있고, 살아서 누렸던 권세가 사후에도 이어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대인들이 상상한 내세는 현세의 차별적인 질서가 그대로 이어지는 곳이다. 귀족은 죽어서도 귀족이고, 노비는 죽어서도 노비의 삶을 살 것이란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고대 한국인들만 이런 내세를 상상한 건 아니다. 중국의 선진시대에 인간 존재를 뛰어넘는 세계인 천상타계는 귀족 이상의 신분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에도 천황, 귀족들만 사는 사후세계를 그렸다. 내세는 현세와 다름없는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무덤은 죽은 이의 사후거주처라고 믿었던 것이다.

 

◆불교의 수용…‘닫힌 내세’에서 ‘열린 내세’로의 변화

 

내세에서조차 이어지는 차별이란 오늘날의 관점에서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지만, 신분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했던 당대인들은 큰 거부감을 보인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불교가 수입된 이후 변화를 보인다. 고분벽화에서는 생활풍속계의 소재들이 5세기 중엽을 지나며 불교적인 소재, 내용으로 대체되어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천1호분이다. 시신을 두었던 널방은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연꽃만으로 장식되어 있다. 입구와 널방 사이에 위치한 앞방에는 보살과 비천, 연봉오리 등이 가득하다.

 

불교의 영향은 차별을 당연시했던 내세관에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불교에서 내세는 현생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생전에 쌓은 선악에 의해 행복하고 영원한 내세의 삶을 살 지, 고통이 이어질 지가 결정된다. 

 

울산대 전호태 교수는 “불교가 고대 국가에 수입되면서 가장 크게 바뀌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며 “살면서 지은 선악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업보설은 신분에 따라 결정되는 ‘닫힌 내세’를 부정하면서 ‘열린 내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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