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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부끄러워서" 말하면 처벌 감경… 법감정과 동떨어진 영아살해죄

입력 : 2019-10-10 18:51:04 수정 : 2019-10-10 23: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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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살인죄보다 낮은 형량… 법 개정 목소리 커져 / 혼전임신·불륜 인한 ‘치욕은폐’ / 양육 상황 등 고려해 처벌 낮춰 / 아기 방치 사망시킨 여성 집유도 / “저항 못 하는 약자… 선처 안 돼” / 56% “개정 필요”… 13% 폐지 주장 / 미성년 경우 16.7% “동기 인정”

지난 5월 부산지법은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A(27)씨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취지의 검사 항고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2017년 4월 혼자 출산한 뒤 9시간 동안 아기를 방치해 숨지자 이불로 싸서 침대 밑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터였다. A씨는 당시 진통이 시작되자 인터넷에서 ‘낙태’ ‘유기’ ‘영아 유산’ 등 단어를 검색하며 출산을 숨길 방법을 모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살인죄의 경우 무조건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A씨에게 적용된 영아살해죄는 그렇지 않아 집행유예가 가능했다.

현행 형법은 직계존속이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서나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을 예상해 영아를 살해한 때는 일반 살인죄보다 감경해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치욕 은폐’(부끄러운 사실을 감춤)는 혼전임신이나 불륜관계 등을 숨기기 위한 목적 등이다. 이를 두고 법학계에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저항할 능력이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 살해죄에 대한 처벌을 가볍게 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영아살해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일반 국민의 법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일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지 ‘형사정책’에 게재된 논문 ‘영아살해죄의 주관적 동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김용애·김민지)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반인 4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267명(55.6%)이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폐지’ 의견도 63명(13.1%)이 냈다. 반면 ‘현행 유지’ 답변은 146명(30.4%)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영아살해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변모가 필요하다는 사회 일반의 시대적 요청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형법 제정 당시와 사회적 인식 변화 등에 비춰 법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영아살해죄의 법률상 구성요건인 △치욕 은폐 △양육할 수 없음 등 주관적 동기도 처벌 감경사유로서 일반인의 공감대를 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일반인 120명을 대상으로 성인이 외도로 인해 임신한 후 그 사실이 알려지는 부끄러움을 은폐하기 위해 영아를 살해한 시나리오를 접하게 하고, 이 사례의 영아살해죄 인정 여부를 물은 결과 그 주관적 동기가 인정돼 감경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응답자는 12.5%에 불과했다.

미성년자가 학생 신분에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는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영아 살해를 감행한 시나리로를 접한 다른 조사 대상자들 중에서도 16.7%만 그 동기를 인정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출산에 따른 비정상적 심리상태로 산모가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 대해선 35.0%가 그 주관적 동기를 인정해줬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에 대해 “산모 출산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라는 주관적 동기에 비해 ‘치욕은폐’나 ‘양육할 수 없음’이란 동기는 사회적 가치관이나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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