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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끈질기다”…핵미사일 향한 北의 30년 집착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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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05 10:00:00 수정 : 2019-10-05 17: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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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2일 오전 강원 원산 앞바다에 설치된 수중발사대에서 수면 위로 상승하고 있다. 뉴시스·노동신문

1992년 10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 세레메티예보 제2국제공항. 북한행 여객기에 탑승하기 위해 출국장에 선 사람들 앞에 러시아 보안요원들이 나타났다. 이날 러시아측이 출국을 막은 사람들은 32명. 러시아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설계와 개발을 맡았던 마케예프 설계국 엔지니어들이었다. 러시아측은 이후 수차례에 걸쳐 엔지니어들의 북한 입국 시도를 막았으나, 미사일 개발 실무진과 그들이 갖고 있던 기술자료들은 이미 북한으로 넘어간 뒤였다. 

 

1993년 9월 북한은 일본을 통해 구소련제 폭스트롯급, 골프-2급 잠수함 12척을 고철용으로 반입했다. 골프-2급 잠수함은 SLBM 발사장치를 장착한 모델이다. 당시 러시아는 미사일과 사격통제장치 등 핵심 장비를 제거했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은 발사관, 사출장치를 비롯한 SLBM 운용에 필요한 장비들을 손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2개 이상의 핵탄두를 탑재할 잠재력을 지닌 고체연료 탑재 북극성-3형 SLBM과 3000t급 잠수함을 공개했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진행해온 핵억제력 완성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빠르게 이뤄지는 北 미사일 개발…외부 지원 가능성

 

지난 2일 북한이 강원 원산 인근 해상에서 실시한 북극성-3형 SLBM의 시험발사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고각사격으로 450㎞를 비행했지만, 정점고도가 910㎞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행거리는 2000㎞ 안팎에 달한다.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액체연료인 백두산 엔진을 쓴다. 백두산 엔진은 우크라이나 국영 우주로켓 제조업체 유즈마쉬가 1965년부터 생산했던 RD-250 엔진을 일부 개량한 것이다. 

 

왼쪽부터 북한이 2016년 8월 시험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과 2017년 2월 지상발사용으로 개조한 북극성-2형, 맨 오른쪽은 3일 공개한 신형 SLBM 북극성-3형이다. 북극성 1형과 2형은 탄두부가 뾰족한 모양이지만 3형은 둥글다. 연합뉴스

반면 북극성 계열 미사일의 ‘족보’는 베일에 싸여있다. 북극성-1형의 고체연료 엔진은 2016년 3월 24일 지상 연소실험을 실시한 사진이 공개됐고, 4월 23일 사출실험에서 30㎞를 날아갔다. 이후 8월 24일 500㎞를 비행하며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6개월만에 엔진과 미사일의 신뢰성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극성-3형도 최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지상사출시험이 이뤄진 듯한 정황이 위성에 포착됐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은 없었다. 2017년 관련 도면이 일부 드러난 적은 있으나,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은 그때와는 외형이 다르다. 2년도 채 안돼 미사일을 새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개발 속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만, 이력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화성-12형을 비롯한 액체연료 엔진 미사일과 북극성 계열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광석화처럼 빠른 개발 속도는 설명하기 어렵다.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인 2017넌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 열병식에 등장한 북극성-1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연합뉴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1980~1990년대 북한으로 유입된 러시아 기술과 인력이다. 로켓 엔진 설계와 제작, 실험을 위해서는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1992년 방북이 저지됐던 러시아 마케예프 설계국 엔지니어들은 30년 동안 SLBM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 

 

북한이 러시아 로켓 기술자들에게 접근한 것이 1980년대 중반부터였고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 등에서 기술을 수집한 정황이 있었으며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원형이 러시아제 R-27 SLBM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에 넘어간 러시아 SLBM 개념과 관련 기술, 인력 등이 미사일 개발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서 기술이 넘어갔을 수도 있다. 1970년대 중국은 북한과 함께 사거리 600㎞의 DF-61 탄도미사일 공동개발을 진행한 전례가 있다. 북극성-1형의 외관은 중국제 쥐랑-1 SLBM과 유사하며, 북극성-3형도 중국제 쥐랑-2와 비슷하다. 쥐랑-2가 다탄두 미사일이라는 점에서 북극성-3형도 다탄두 기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사일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기계, 원료 등이 외부에서 유입됐을 가능성도 많다. 2016년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세관은 총알도 뚫지 못하고 500℃의 고열에도 타거나 녹지 않는 아라미드 섬유실 40㎏을 북한으로 밀반출하려던 시도를 적발했다. 2009년 7월 중국 단둥 세관은 북한으로 밀반출되려던 바나듐 70㎏을 발견, 회수했다. 바나듐은 열과 마모에 견뎌야 하는 미사일 등 고속비행물체 동체 제작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2016년 4월9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공개된 백두산 엔진 시험장면. 화성-12형 미사일에 탑재된 백두산 엔진은 러시아제 RD-250 엔진을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연합뉴스

조선중앙TV가 2017년 5월 방영한 화성-12 미사일 장착 장면에 등장한 기중기는 1992년 일본 기업이 북한에 수출한 것이다. 한국이 2012년 12월 회수한 북한 은하-3호 미사일 잔해에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스위스, 영국제 부품과 함께 한국에서 생산된 D램 반도체가 발견됐다.

 

2017년 8월 김 위원장이 국가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한 사진이 공개됐을 때, 전문가들은 갈색 빛깔의 고강도 탄소섬유에 주목했다. 이를 제작하려면 고강력 섬유감기 선반이라는 정밀기계가 필요하다. 자력갱생을 부르짖는 북한이지만, 정밀기계를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연구개발용으로라도 반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조선연화기계라는 회사를 앞세워 중국, 대만, 러시아 등으로부터 정밀기계를 밀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유엔 대북 제재를 회피하면서 인력과 기술, 원료, 기계 등을 반입해 미사일과 엔진 개발 및 생산 시스템을 단기간 내 구축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극성-1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수면 위로 사출되면서 엔진을 점화, 가상표적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연합뉴스·노동신문

◆반격 능력으로 체제 지키며 미국과 협상하나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운용 전략은 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하다. 단거리 미사일인 KN-23과 초대형방사포 및 대구경조종방사포,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북극성-2형, IRBM인 화성-12형, ICBM인 화성-15형, SLBM 북극성-1/3형까지 ‘미사일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감안하면 지나칠 정도로 많다.

 

이는 미국에 ‘공포’를 안겨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핵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이다. 북한이 반격 차원에서 미국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이 있다면, 미국은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우려해 핵공격을 주저하게 된다. 미사일방어(MD)망이 북한 미사일을 100% 요격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일본, 괌, 하와이와 본토 등 다양한 곳에서 미국이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타격할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KN-23이 한국을 겨냥했다면 북극성-2형은 일본, 화성-12형은 괌과 하와이, 화성-15형은 미 본토 타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이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7월 23일 보도한 모습. 함교 뒷부분(붉은 원)이 다소 올라와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나 함교(파란 원)에 미사일이 탑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북극성-3형은 이같은 북한의 의도에 또다른 옵션을 제공한다. 바다 밑을 항해하는 잠수함은 탐지가 쉽지 않다. 미국이 첨단 전력을 동원해 북한 내륙의 핵시설을 모두 파괴해도, SLBM이 남아있다면 북한은 ‘최후의 반격’을 시도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런 대목이다.

 

북미 실무협상을 위해 스웨덴으로 떠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3일 “미국 측에서 새로운 신호가 있었으므로 큰 기대와 낙관을 가지고 가고, 결과에 대해서도 낙관한다”고 밝혔다. 

 

1980년대 영변 핵시설 가동으로 시작된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노력은 약 30년이 지나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동안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을 받아칠 준비를 착착 진행해왔다. 진정한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해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30년에 걸친 북한의 시도를 우리는 저지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북한은 우리가 모르는 또 하나의 카드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미 협상 전망을 낙관하기에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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