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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메스암페타민 같은 각성제로 시작하죠. 피곤함을 잊고 살찌는 걸 막기 위해서요. 다음엔 엑스타시에요. 패션쇼의 여흥을 만끽하기 위해서죠. 그리곤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도록 코카인의 힘을 빌리고, 겉만 화려한 삶의 허망함을 잊고자 LSD에 손을 대지요. 마지막엔 헤로인을 찾아요. 헤로인에 빠지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환각을 더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려 들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세계적인 톱모델 나타샤가 털어놓은 마약중독 과정이다.

마약은 통증을 잊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 고대 수메르인은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로 여겼다. 일본 군부는 2차 세계대전 때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공포감을 느끼지 않도록 메스암페타민을 제공했다. 마약인 해시시를 먹은 사람이란 뜻을 지닌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은 암살(assassination)의 어원이 되었다. 11세기 말 이슬람 시아파 분파가 만든 비밀결사 하시신이 해시시를 먹고 수니파 지도자, 십자군 전사 등을 암살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럽문화사엔 아편에서 창조적 영감을 구한 예술가들이 많다. “내 머릿속에서 예쁜 고양이가 산책을 한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마약 복용의 황홀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문제는 중독성이다.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진다. 보들레르는 아편 중독으로 금치산자 선고까지 받았다. 오죽하면 멕시코의 마약 밀매조직 ‘더 패밀리’가 마약 금지를 내부강령에 명시했겠는가.

중국은 마약사범에 관한 한 무관용 정책을 고수한다. 1㎏ 이상의 아편이나 50g 이상의 헤로인 등을 제조·판매·운반·밀수할 경우 사형에 처하거나 15년 이상의 징역으로 엄벌한다. 19세기 아편전쟁의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기에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2018년 우리나라 마약사범이 1만2613명으로 2010년에 비해 23 증가했다. 마약 소지 사범은 58, 밀수 사범은 55 늘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은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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