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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범행…모범수… 두 얼굴의 용의자, '과학수사'가 찾았다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확인]

관련이슈 악의 연대기+ ,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춘재

입력 : 2019-09-20 06:00:00 수정 : 2019-10-15 14: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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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어떻게 밝혀냈나 / 자동화로 분석 기술력 크게 향상 / 소량의 시료로 ‘DNA지문’ 특정 / 수형인 DNA 데이터베이스화에 / 감정인 기술·증거 보존도 큰 역할 / 휴대폰 추적 등 수사기법 첨단화 / 살인사건 검거율 2018년 96% 달해 / 용의자 이모씨, 1994년 처제 성폭행후 둔기 살해 / 시신유기 등 계획적 범죄 큰 충격 / 교도소선 한번도 문제 안 일으켜 / 일반 수용자였다면 가석방 대상

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확인된 건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 곁에 연쇄살인범이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씻게 된 것이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과학수사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첨단 과학수사기법 및 치안수준의 향상이 연쇄살인 재발을 막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이모씨로 특정하는 데는 진일보한 DNA 분석기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피해자 유류품 분석 과정에 적용된 건 단연쇄반복(STR) 분석기법이다. STR는 DNA 상염색체상에 존재하는 한 부분인데,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식별력이 있다. DNA 내에서 일종의 지문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실 이 기법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기기자동화 등을 통해 STR를 증폭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에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서중석 SJS 법의학 연구소장(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초창기에는 (DNA 시료가) 부패하거나 변형되면 감정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약간 부패하더라도, 시료가 굉장히 조금이더라도 감정이 가능하다”며 “발전한 감정기법과 감정인들의 기술 향상, 그리고 잘 보존된 증거물이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2010년 이후 검찰에서 관리하는 ‘수형인 등의 DNA 데이터베이스’도 사건 해결에 한몫했다. 대검찰청 DNA화학분석과는 이미 수감생활을 하고 있던 이씨의 DNA를 2011년 10월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을 해뒀고, 지난달 9일 국과수로부터 DNA신원확인을 의뢰받아 국과수가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이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이후 2019년 8월까지 총 16만9180명의 DNA 신원확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고, 이를 통해 2247건의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이 같은 수사기법의 발전은 연쇄살인의 재발을 막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경찰은 한국에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경기 서남부에서 부녀자 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 사건’을 마지막 연쇄살인으로 보고 있다. 2009년 이후 10여년 동안 한국에서 연쇄살인이 보고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연쇄살인은 경찰청이 공식적으로 통용하고 있는 개념은 아니다. 다만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연쇄살인을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살인의 동기나 계산 없이, 살인에 이르는 흥분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2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로 정의내리기도 했다.

경찰은 연쇄살인의 성향을 가진 범죄자가 최초 살인 범죄를 저지른 후 추가 범행을 노리더라도 신속한 검거가 이뤄지기 때문에 연쇄살인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DNA 분석기법이 발달한 데다 폐쇄회로(CC)TV, 휴대폰 위치추적 등 전반적인 치안수준이 점점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살인사건(미수 등 제외) 검거율은 2015년 97.8%, 2016년 97.8%, 2017년 100%, 2018년 96.4% 등을 기록하는 등 거의 100%에 가까운 수준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이번 건은 DNA 감식기술의 발전과 함께 열악한 수사 환경에서도 증거를 많이 수집해 이를 잘 보관했다는 점과 강력범죄자에 대한 DNA 제출을 의무화한 제도의 시행, 그리고 공소시효가 지나서라도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경찰의 의지 등이 결합한 쾌거”라며 “다만 발전된 수사기법과 감시시스템이 범죄자의 연쇄살인 심리를 제어하고 있지만, 연쇄살인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찰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이춘재(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도. 연합뉴스

◆“잔혹하고 치밀” vs “1급 모범수”… 두 얼굴의 용의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씨가 20년 넘도록 수감된 교도소에서 일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1급 모범수로 생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94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당시 20세의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할 때 수법이 잔혹하고 치밀했던 것으로 전해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1월 청주시 흥덕구에서 발생한 ‘청주 처제 살인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 1995년 10월 23일부터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과거 자신의 집에 온 처제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이고 성폭행한 뒤 둔기 등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일 오후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의 DNA가 검출된 장소로 알려진 9차 피해 장소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 구봉산 근린공원에서 한 시민이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화성=남정탁 기자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청주 서부경찰서 형사계 감식담당이자 올해 6월 정년퇴직한 이모(62) 전 경위는 “이씨가 화성 사건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범행 수법은 굉장히 잔혹하면서 치밀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시신을 집에서 1㎞가량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버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증거를 찾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경위는 사건 당일 이씨의 집에서 물소리가 났다는 제보를 접하고 욕실 정밀감식을 벌여 범죄 증거로 채택된 피해자의 DNA를 검출했다. 이씨가 1심 재판에서 ‘집에서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는 식으로 혐의를 전면 부인한 주장이 뒤집힌 것이다. 재판부 역시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졌다”면서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 씨가 24년째 수감돼 있는 부산교도소 전경. 연합뉴스

이씨의 이면에는 ‘1급 모범수’란 다른 얼굴이 있었다. 24년째 부산교도소 내 혼거실에서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평범한 수감자라는 이미지가 붙었다. 그동안 문제를 일으켜 징벌이나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수용자들은 생활 평가에 따라 1∼4급으로 나뉘는데 이씨는 평소 모범적이라고 평가돼 1급이 된 상태였다. 교도소 측은 이씨가 무기징역이 아닌 일반수용자였다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20년이 넘는 수감생활 중 외출한 적은 없었고, 면회 허용 후 1년에 한두 번 가족과 지인이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는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이뤄진 경찰의 1차 조사에서는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 전날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 이씨를 찾아 추궁했음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 이모씨, 영화 ‘살인의 추억’ 봤을까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해결에 실패한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은퇴 뒤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박 형사가 피해자가 발견된 농수로를 살펴보다 한 아이로부터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목격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은 개봉 10주년 행사에서 용의자가 영화를 보러 올 것을 예상해 이런 연출을 시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용돼 있는 이모씨가 지목되면서 그가 실제 ‘살인의 추억’을 봤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씨는 처제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이 2003년 개봉했기 때문에 이씨가 이 영화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다면 부산교도소에서 살인의 추억이 방영됐을까.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교도소에서는 교화를 목적으로 영화 등을 선정해 틀어주며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은 원칙적으로 제외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 등은 깐깐하게 심사해 거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기준은 교정채널이 생긴 2006년부터 적용됐다. 이 원칙에 따르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며 살인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은 교도소 방영에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씨와 같이 교도소 생활을 한 재소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씨가 살인의 추억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재소자는 인터뷰에서 “이씨와 수감생활을 (같이) 한 2년 동안 ‘살인의 추억’이 3번 넘게 방영됐다”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가 범인을 노려보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이씨가 직접 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용의자가 자신의 영화를 직접 봤으면 한다는 봉 감독의 바람이 교도소에서 이뤄진 셈이다.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도 재조명

 

화성 연쇄살인 범인이 특정된 가운데 또 다른 미제사건인 ‘대구 성서 개구리소년 실종 암매장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민갑룡 경찰청장이 현직 경찰청장 가운데 처음으로 유골 발견 현장을 방문하기로 해 사망자 추모관 건립, 재수사 등 유가족의 염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19일 대구경찰청 등에 따르면 민 청장이 20일 오후 1시쯤 달서구 와룡산 세방골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현장을 개인 일정으로 방문한다. 앞서 민 청장은 지난 3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이 유가족과 만남을 제안하자 “조만간 사건 현장을 찾겠다. 재수사도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서울에서 유족과 면담도 했다.

 

지난 2002년 9월 26일 대구 개구리소년들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관들이 옷가지 등을 살펴보는 모습. 대구=연합뉴스

전미찾모 측은 그동안 사망자 추모시설 건립을 비롯해 정부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심리치료비용 등 경제적 지원 등을 대구시와 경찰청 등에 꾸준히 요청해 왔다. 대구시는 지난 10일 유족 및 전미찾모 회원들과 면담한 뒤 지원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관련 조례가 없어 난항을 겪고 있다.

 

‘대구 성서 개구리소년 실종 암매장 사건’은 1991년 3월26일 대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조호연·김영규·박찬인·김종식군 등 소년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와룡산에서 실종됐다. 당시 경찰은 연인원 32만명을 동원해 인근 저수지와 마을 주변 산과 강, 대형화장실 등을 뒤지며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11년이 흐른 2002년 9월26일 대구 달서구 세방골 중턱에서 백골 시신으로 발견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2002년 11월 “흉기나 둔기 등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 중간보고를 발표했으나 아직 최종보고서를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은 2006년 3월25일로 해당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에도 사건을 ‘내사 중지’ 상태로 전환하고 제보를 받고 있다. 범인이 공소시효 이전에 해외로 도피했을 경우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4월25일 수사 주체를 대구 성서경찰서 전담팀에서 대구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으로 변경하고, 당시 사건기록을 인수해 재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록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하고 첩보수집을 통해 새로운 수사단서를 확보하고 용의점에 대한 탐문수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DNA) 감정으로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지목되면서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개구리소년 사건도 해결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윤우석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DNA는 습기·곰팡이만 없으면 체액·혈흔 등 수십년 이상 검출이 가능하다”면서 “DNA 분석 기술이 진일보하면서 악명 높은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경·이강진·김건호·강승훈 기자, 대구=김덕용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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