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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내하고 조선 갈래?”… 아버지는 자꾸 물으셨다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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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19 06:30:00 수정 : 2019-09-18 22: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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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만난 한인 2세들 / 현지 한인사회 이끄는 박순옥 회장 / “돌아가실 때까지 입버릇처럼 말해” / 이예식씨 ‘1세대’ 삶 담은 사진집 내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선 어린 딸 옥희가 과부인 어머니와 ‘남자 손님’의 로맨스를 풀어낸다.

천진함으로 무장한 ‘관찰자’ 옥희의 내레이션은 역설적으로 한(恨)의 정서를 배가시킨다. 러시아 사할린에 남은 한인 2세들은 대다수가 타국의 ‘옥희’였다.

유즈노사할린스크 한인문화회관에서 만난 박순옥 사할린주한인협회장은 색 바랜 가족사진을 내밀었다. 사할린 이산가족협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2017년 취임한 뒤 현지 한인사회를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어눌한 한국어 말투로 작고한 친부의 그리움을 눌러 담았다.

“‘니 내하고 조선 갈래.’ 1939년 강제징용된 아버지가 생전 입버릇처럼 했던 말입니다. 약주도 안 드셨는데 자꾸 물어봅니다. 나는 싫다고 했지요. 아버지는 1975년 한국에서 온 편지를 받고 가슴을 치고 울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한 첫 아내의 30여년 만의 전갈이었지요. 아버지의 친부모가 2년 전에 세상을 등진 걸 그제야 안 겁니다.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 이듬해 돌아가셨어요. 병실로 들어가려던 제게 어머니는 ‘조선 가겠느냐 물어보면 알겠다고 하라’고 했어요. 저는 몸이 하얗게 질린 아버지의 물음에 처음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뛰어놀았어요. 한 시간 뒤에 아버지는 떠났습니다.”

올해로 경력 30년째인 이예식 사진작가(70·사진)는 사할린 동포 ‘1세대’의 삶을 렌즈에 담고 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016년 자신이 낸 사진집 ‘귀환’을 펼쳐 보였다. 1990년대 초 사할린 동포들의 영주귀국, 일본 총영사관 앞 배상 요구 시위 등 굵직한 한인 역사가 담겼다.

“충북 출신인 아버지는 19살 때 사할린 탄광으로 징용을 왔어요. 지금은 영주 귀국하셔서 사할린 동포 ‘정착촌’인 경기 안산 고향마을에 계시죠.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한숨을 연신 내뱉을 때 이유를 몰랐어요. 그래서 지금 사진을 찍는 거죠. 찍을 때마다 아버지의 감정이 올라와요. 매번 슬픈 마음을 느끼죠. 노구를 이끌고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떠나는 할머니, 징용 간 남편을 50여년 만에 만난 여인의 미소. 사진에 담을수록 가슴속 응어리가 커져요.”

 

사할린=안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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