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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慧月)은 지혜의 검을 휘두른 대선사였다. 그의 마음은 달처럼 맑고 천진무구했다. 그에게는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선사는 대중법회를 열면서 “나에게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활인검(活人劍)과 사인검(死人劍), 두 자루의 명검이 있다”고 말했다. 그 소문을 듣고 경상남도를 총괄하던 일본 헌병대장이 찾아왔다. “스님께서 두 개의 명검을 가지고 계신다기에 그걸 구경하러 왔소이다.” “그럼, 보여 줄 테니 나를 따라 오시오.”

 

혜월은 섬돌 위로 올라갔다. 헌병대장도 스님의 뒤를 따라 섬돌 위에 올라섰다. 그때였다. 혜월이 돌아서더니 느닷없이 헌병대장의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헌병대장은 갑작스런 기습에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헌병대장이 스님을 노려보았다. 스님은 섬돌 아래로 내려와 한 손을 내밀어 헌병대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방금 전, 그대의 뺨을 때린 손이 죽이는 칼이요, 지금 그대를 일으켜 세우는 손은 살리는 칼이오.” 헌병대장은 크게 깨닫고 혜월에게 큰절을 올리고 돌아갔다.

 

최근 한강 토막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30대 남성은 “피해자에 미안한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라고 말했다. 저승으로 이어진 분노의 살기가 섬뜩하다. 모텔 종업원인 그는 피해자가 숙박비를 내지 않고 반말하자 살해한 뒤 시신을 여러 부위로 훼손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한강에 버렸다. 지난해 가을에는 20대 남성이 홧김에 알바생을 흉기로 80번이나 찔러 죽이는 일마저 있었다.

 

실제로 분노에는 사람을 죽이는 에너지가 있다. 미국의 인체생리학자가 튜브 한쪽 끝을 사람의 코에 꽂고 다른 끝을 얼음물에 담긴 용기에 담근 뒤 사람의 기분에 따라 어떤 가스가 나오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평온할 때 내뿜는 기체는 액체로 변하면 무색이었으나 화가 날 때는 밤색 침전물이 생겼다. 이 분노의 침전물을 실험용 쥐에 주사하자 몇 분만에 죽어버렸다.

 

사람이 화를 내면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독성 물질이 분비된다. 한 사람이 1시간 동안 화를 낼 때 나오는 분량이면 80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치명적인 독소가 우리 내부의 장기에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타인에게 분노를 쏟아내기 전에 나의 육체와 영혼이 골병들 수밖에 없다. 혜월이 말한 사인검의 최초 희생자는 나 자신인 셈이다. 그 이치를 알고도 분노의 칼날을 휘두르는 자는 어리석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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