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글쓰기의 고통에는 처방이 없어… 오로지 겪어내야”

입력 : 2019-08-16 01:00:00 수정 : 2019-08-15 21:11: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세계적 작가 303인 인터뷰 모아 책으로 / 작가 대부분이 망설임·두려움 호소 / “개가 똥누기 전 빙빙도는 모습 같아” / 릭 무디 “마감일 어기고 영화 보고… / 마음이 들썩이면 그때 글쓰러 가라” / 어윈 쇼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 타자기 대신 술독에 빠지고 말것”

글쓰기에 대한 많은 책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전반적으로 문학이 쇠퇴 국면에 있다고들 하지만 문학상 응모작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글쓰기라는 게, 그것도 문학에 대한 열망은 단순히 쓰는 행위 차원을 넘어서는 치유의 기능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세계 유명 작가들은 어떤 이유로 글을 쓰고 벽에 부닥칠 때는 어떤 심정으로 받아들이거나 극복하며, 구체적으로는 어떤 기법과 플롯을 각자 염두에 두고 집필에 임하는 것일까.

‘타임’지에서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평을 들었던, 1953년 뉴욕에서 창간한 문학잡지 ‘파리리뷰’가 60여년간 인터뷰한 세계 작가들 중 303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공통 질문에 대한 답을 가려 편집한 ‘작가라서’(김율희 옮김·다른)에서 그 모범답안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글쓰기의 고통에는 처방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고통을 겪어내야 합니다. 재능은 중요하지 않아요. 재능이 있지만 무너진 사람을 많이 압니다. 재능을 뛰어넘는 온갖 평범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훈련, 애정, 행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내입니다.” 영국 시인이자 소설가인 로런스 더럴도 재능보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더 중시한다. “물은 가만히 두어도 낮은 곳으로 흐르니 저에게 주어진 힘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얻으려 기를 써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고, 마찬가지로 제가 가진 자질을 나태한 태도로 대하는 것은 완전히 부당한 처사입니다.”

글쓰기가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많은 이들이 매달릴 이유는 없을 터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라엘 소설가 데이비드 그로스먼은 글쓰기의 쾌락에 대해 말한다. “저는 늘 글쓰기를 섹스에 비교합니다. 하기 직전에는 그게 어떨지 막연하게 짐작만 합니다. 위협적인 것이다, 매혹적일 것이다, 등등 많은 추측을 하지요. 하고 난 직후에는 그것 없이 어떻게 평생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곧장 중독되지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쾌락은 당연히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은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말이 제격이다. “타자기 앞으로 이끌려 갈 때가 있습니다. 개와 비슷해요. 개가 똥을 누기 전에 빙빙 도는 모습과도 같지요. 땅이나 풀밭 주위를 한참 빙빙 돌다가 쪼그려 앉을 때 말입니다.”

아침 6시에 시작해 정오까지 글쓰기를 매일 규칙적으로 지속했다는 헤밍웨이나, 규칙적인 일과가 중단되는 주말이 싫다는 ‘거미여인의 키스’의 마누엘 푸익 같은 작가들이 더 많지만, 일정표 같은 건 무시한다는 이들도 있다. 미국 소설가 릭 무디는 “마감일 어기고, 영화를 보러 가고, 음식을 마구 먹어대고, 간통을 저지르고,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고, 거리의 부랑아를 축복하고, 공무원을 협박”한 뒤 “당신이 보고 들은 것들에 마음이 들썩인다면, 그때 글을 쓰러 가라”고도 말한다. 릭을 꾸짖듯 남아공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네이딘 고디머는 “일상적인 행동은 매우 온당하고 훌륭한 일”이라며 “그런 행동은 우리를 되살리고 세상을 되살린다”고 말한다. 플롯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집필에 들어가는 이도 있는 반면, 에세이 쓰듯 마음 편하게 이어간다는 소설가들도 있다.

‘파리리뷰’가 진설해 놓은 작가들의 답변은 같은 질문에도 정반대로 나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 비슷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호소하고 있어 어느 한 개인의 고독만은 아니라는 위안도 얻을 수 있다. 이들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글을 쓰는 태도와 방법에 정답은 없어 보인다. 굳이 찾자면 누구나 각자에게 맞는 최선의 길을 찾아가라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이처럼 모호한 처방이 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처지와 고민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어윈 쇼의 이 말이야말로 글 쓰는 모든 이들에게 위안과 지침이 될 만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형벌을 극복하고 받아들이고 밀어제치며 나아갈 힘과 야망이 없다면, 그는 결국 책 한두 권을 낸 평범한 사람이 되어 타자기를 두드리는 대신 술독에 빠지고 말 겁니다. 누구에게나 실패가 성공보다 더 지속적으로 찾아옵니다.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사는 것과 같지요. 가끔 화창한 날도 있지만 대개 밖에는 비가 내리니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편이 낫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