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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김 서방이 바로 부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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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4 08:17:09 수정 : 2019-08-14 08: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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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鏡虛)는 그의 법호처럼 ‘맑디맑은 빈 거울’이었다. 면벽하는 동안 구렁이가 몸을 감아도 정신을 흩트리지 않았고 방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자 경전을 뜯어 문을 발랐다. 그는 생사와 생각에 거리낌이 없었다.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렀다. 한국의 진정한 달마였다.

 

어느 날 경허가 머물던 서산 천장사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날은 큰부자가 아버지의 49재를 지내는 날이었다. 제사상에는 떡과 과일이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워낙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제사가 끝나면 그것을 얻어먹으려고 절 마당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굶주림으로 누렇게 뜬 사람들이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제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경허는 상에 차려진 떡과 과일을 몽땅 바구니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바깥에서 제사가 끝나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소!” 부자는 노발대발하고, 주지스님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경허가 차분한 목소리로 부자에게 말했다. “오늘은 구천을 떠돌던 아버님이 하늘의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아버님께서는 평소에 얼마나 선행을 하셨습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생전에 못다 하신 공덕을 베풀었으니 이제 극락왕생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부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감읍한 부자는 부친이 극락왕생한 보답으로 시줏돈을 더 내놓겠다고 제의했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 돈으로 인근 30리에 사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십시오.” 경허가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부자는 자기도 부처님에게 시주해서 복을 받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경허가 다시 말했다.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게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농사짓고 사는 박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에게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오.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 최상의 불공입니다.”

 

얼마나 멋진 오도송인가! 이 땅의 종교와 종교인들이 지향할 길이 아닐까싶다. 그밖의 다른 길은 사랑의 이름을 빈 탐욕일 뿐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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