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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년 세종 16년 4월26일. 세종은 “여자 종이 아기를 낳으면 그 남편도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고 형조판서에게 지시했다(조선왕조실록 64권). 만삭이거나 출산 뒤 100일이 지나지 않은 여종에게 일을 시키지 않도록 명령했지만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잇따라 목숨을 잃자 후속 조치를 한 것이다. 여자 종에게 출산휴가 100일을, 남자 종에게는 일종의 ‘육아휴직’ 30일을 준 셈이다. 실록에 노비(婢子)와 천민의 처(役人之妻)로 기록, 하층민들에게만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대를 앞선 혜안이 읽힌다.

독일의 첫 국방장관을 지낸 ‘여장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7남매의 엄마다. 남편은 의사이자 기업 대표다. 많은 자녀를 키우면서도 사회활동이 활발한 비결을 묻자 “육아는 주로 남편이 담당한다”며 “더 많은 남성들이 내 남편을 본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015년 첫딸이 태어나자 두 달간 육아휴직을 갔다. 페이스북은 남녀 직원 모두에게 4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을 주고, 상사가 ‘쓸 것인지’가 아니라 ‘언제’ 쓸 건지를 묻는다.

우리도 ‘용감한 아빠’들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민간 부문 육아휴직자 5만3494명 중 남성이 1만1080명이다. 5명 중 한 명이 아빠인 셈이다. 육아휴직을 도입한 2001년 남성이 단 2명, 2009년에도 502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빠른 성장세다. 재정 지원 영향이 가장 컸다. 2014년 10월 모든 자녀에 대해 200만원까지 급여를 주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가 히트를 쳤다. 2017년 롯데그룹이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것도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한몫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아빠 육아휴직은 아직 낯설다. 최대 걸림돌은 역시 직장 분위기다. 승진 불이익·동료 부담 증가 걱정과 직장의 곱지 않은 시선이 겹쳐 있다.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란 사회적 통념도 남아 있다. 가정의 행복이 일터로 이어지면 능률이 오르고 국가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아빠 육아휴직이 40%가 넘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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