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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생존 위협 우려속 새 부가가치 창출 기대감 공존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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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7 14:00:00 수정 : 2023-12-10 15: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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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알파고로 촉발된 활용 가치 / 대형 법무법인들 도입 준비 착수 / 법원 ‘스마트법원’ 사업 추진 나서 / 아직 소통·사건 맥락 파악력 부족 / 기계가 인간의 삶 결정 거부감 커 / 법관·변호사로 활용 부적절 판단 / 서류 몇 만쪽서 관련 자료 검출 등 / 보조자로서의 역할 발전 방향 수립 / 이른바 ‘리걸 테크’ 투자 확산 급증
“인간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류가 진 것은 아닙니다.” 이세돌 9단은 2016년 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국에서 고배를 마신 뒤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이세돌도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두 가지 신경망을 활용해 24시간 쉬지 않고 기보를 공부한 AI를 바둑으로 꺾을 순 없었다. 이세돌의 패배는 학습 능력을 갖춘 AI가 자신의 위력을 전 세계에 여봐라는 듯 과시한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동시에 AI는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 새로운 기술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법조계 역시 AI의 활용 가치에 대해 주목한다. 수많은 판례 하나하나가 AI의 ‘학습 자료’로 활용돼 재판 전략 수립 및 승소 가능성 분석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법무법인들은 최근 앞다퉈 AI 도입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법원 역시 ‘스마트법원’ 사업을 추진하며 AI 법률 시장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소송을 지휘하는 법관이나 변호사 등도 AI로 대체 가능할까. 26일 대다수 법조인에 따르면 답은 ‘아니요’다. 소송관계인과의 소통은 물론 사건을 구성하는 사실관계의 전후 사정과 맥락을 복합적으로 파악하는 일 등을 수행하는 일은 현재 AI 기술로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형사 재판의 경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피고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사람으로서 ‘기계’한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도 존재한다고 한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는 “단지 이야기를 귀 기울여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돌아가는 의뢰인들이 정말 많다”며 “이건 사람 대 사람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AI는 법조인과 법률 서비스 소비자를 주체로 하는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등장한 산업 분야가 ‘리걸 테크’(법률+기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조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리걸 테크 열풍이 이대로라면 유성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리걸 테크를 가능하게 하는 AI가 습득할 ‘훈련 데이터’(training data)가 워낙 적어서다. 달리 말하면 알파고가 이세돌을 누를 수 있던 건 전 세계에 전산화해 공개된 기보를 쉼 없이 공부했기 때문인데, 리걸 테크 시장에서의 AI는 습득할 기초 자료도 없이 시험장에 내몰린 수험생 신세라는 얘기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IT전문 변호사는 “판례 데이터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으니 AI 법률 시장의 출발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언젠가 판례 빅데이터를 공개할 텐데 우린 준비가 안 돼 있다. 준비가 안 된 채로 (일제에 의해) 강제 개항했을 때를 떠올려보라”고 설명했다. 사법부가 전면적인 판례 공개를 통해 리걸 테크의 발전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은 현재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장차 판례가 전격 공개될 경우 이를 학습한 AI를 법조계에서 활용할 경우 특히 변호사들의 업무 환경은 혁명적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단시간 내에 검토할 수 있는 기록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보다 효율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서울대 고학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연차 변호사들은 인수·합병(M&A) 계약을 할 때 서류 몇 만쪽을 보면서 계약과 관련된 중요 조항을 추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몇 주 밤새우면서 하는 ‘실사’를 AI는 키워드 검색으로 순식간에 해낼 수 있고, 그건 사람이 쫓아가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인텔리콘 법률사무소 임영익 변호사도 “미래지향적으로 보면 개인정보를 지우는 작업을 하면서 (판결문 등을) 조금씩 공개하면 된다”며 “데이터가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도 생길 수 있다. 혁명 국면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판례 공개 필요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법이 허용하지 않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확정판결은 공개하고 있고, 미확정판결을 공개하는 것은 법률 개정이 돼야 가능하다”면서 “국회에서 미확정판결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강하기 때문에 개정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리걸 테크가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국내 사정과는 달리 세계 시장의 이 부분 투자 규모는 2011년 9140만달러에서 2015년 2억9200만달러로 4년간 약 3배나 뛰었다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다. 특히 영미권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AI가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판례 공개와 별도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도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관련 업계에서 나온다.

아울러 법조인들은 리걸 테크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도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충남대 이상용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는 지능이라고 해도 기술이고 도구니까 분명 변호사들의 능력 확장이나 생산성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면서 “생산성이 향상되면 필연적으로 비용도 절감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리걸 테크라고 해서 반드시 법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이혼 사건의 경우 아동 전문가, 상담 전문가를 결합한 ‘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리걸 테크가 경직된 법조계와 다양한 전문 영역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유지혜·배민영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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