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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20대 명예 퇴직자’가 /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 우리가 약과 독, 명예와 불명예 / 구분 못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파르마콘(pharmakon)은 ‘마법의 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다. 하지만 파르마콘이란 용어 속에는 독이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약이란 약은 모두가 그렇다. 과용하면 독이 된다. 과거에 의사들은 심장마비와 뇌졸중 예방을 위해 적은 양의 아스피린을 매일 먹기를 권했다. 하지만 최근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심장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른 부작용의 위험이 있어 기존 지침을 변경했다고 한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다른 질병이 없는 상태에서 아스피린을 장복(長服)하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르라고 연구팀은 권고하고 있다.

불로초가 존재한다면 마법의 약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불로초도 마법의 약도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약의 효능과 부작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매사가 그렇다.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중용’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용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키고 견지해야 할 태도이고 자세이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치우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직분을 걸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도 있다.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평균적 상식을 존중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곧 행복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미담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올 여름방학을 강사법 시행과 관련한 업무로 집과 대학을 거의 매일 오가며 보내고 있다. 평소와 달리 교무위원회의도 자주 열린다. 처리 안건 중에는 물론 강사임용과 관련한 일이 현안이지만 그 외에도 재임용심사, 승진심사를 포함해 명예퇴직 신청이나 명예교수 추대 심사도 진행한다.

그런데 올 8월 말 명퇴를 신청하신 어느 교수께서 ‘난 명예교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해 이를 심의한 적이 있다. 자신은 명퇴로 족하니 명예교수 추대는 사양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들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이야 말로 진정한 명예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대부분 직책이나 직업 앞에 붙는 이 ‘명예’라는 타이틀은 실제 그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들을 위촉하는 형식이다. 이미 해당 기관이나 조직을 위해 공헌한 적이 있거나 앞으로 공헌했으면 하는 자를 추대하는 의식(儀式)인 것이다. 실제로 계급도 주어지고, 진급도 한다.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며 온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최불암씨는 실제 경감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 앞에 ‘명예가 붙는 순간 그 교수는 실제 교수가 아닌 사람이 교수로 추대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범이 쥐가 되는 ‘맹호위서’(猛虎爲鼠)를 원하는 교수가 있을까. 어쩌면 이런 사정을 깊이 고민했기에 앞서 언급한 그 교수께서 ‘난 명예교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몇 해 전 한 대기업에서 입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을 명예퇴직 대상자로 지목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았던 이 사건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은폐된 목표였지만, ‘명예롭게 자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수사(修辭)를 부린 것이다. ‘20대 명예 퇴직자’라는 이 말이 자연스러운 조어로 느껴진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아직 약과 독, 명예와 불명예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명예’는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명사 앞에서 관형어로 쓰여, 업적이나 권위를 높이 기리어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특별히 붙이는 칭호다. 런던정치경제대학(LSE),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비롯한 몇몇 해외 유명 대학에서는 명예학위 자체를 수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대학이 앞장서서 명칭과 실상이 서로 꼭 들어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할까.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명예의 의미조차 명확히 헤아리지 않은 채 명예기자, 명예소방관, 명예경찰, 명예조종사, 명예군인 등 ‘명예’를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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