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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번영·통일 염원하는 ‘부용산 음악회’열린다

입력 : 2019-07-08 03:00:00 수정 : 2019-07-07 17: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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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번영·통일을 염원하는 ‘부용산 음악회’가 오는 10일 6시 30분 전남 보성군 벌교읍 행정복지센터 광장서 열린다.(사진)

 

부용산 노래는 박기동작사와 안성현작곡의 작품으로 작사자인 박기동(1917~2004)선생은 1931년도에 벌교보통학교(현 벌교초교)를 졸업하고 일본유학으로 대학졸업후 1943년 귀국과 동시에 현 벌교초교 교사로부임해 4년간봉직했다. 또 벌교상업중학교에서 1년간 재직하는 등 벌교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애향과 애착을 가졌다. 

 

벌교로 시집 온 누이동생 박영애가 1947년 스물넷 꽂다운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에 이르게되자 벌교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그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못하고 애절하고 서글픈 마음을 시로 적어 두게되었다. 다음해 1948년 목포항도여중으로 전근되어 동료음악선생 안성현 교사를 만나 부용산의 시를 곡을 붙여 부용산이란 노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노래가 나오자마자 여수·순천사건이 발생해 산으로 기던 이들이 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노래가 되어 속칭 빨치산의 이름표에 붉은 밑줄이 그어져 안성현과박기동이 연좌에 묶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래는 금지곡이되고 작곡을 한 안성현 선생은 다음해 1949년 9월에 의원면직을 하고 만다. 연이어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후 안성현은 북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용산노래는 봉인된거나 마찬가지였다.

 

박기동선생은 안성현선생이 북에있는 관계로 1951년 교직을 그만두고 출판사일을 시작했다. 지만 수사당국의 감시와 수많은 연행과 구금으로 수난에 연속으로 시집한권도 출판하지 못한채 76세가되던 1993년도에 호주로 떠나야했다. 벌교출신의 시인이자 부용산노래의 작사자인 박기동선생을 벌교읍민회 이형노회장은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읍민회주관으로 선생의뜻을 조금이나마 기리기위한 음악회를 오는 10일 벌교읍행정복지센터광장에서 갖기로했다

 

또 읍민회장은 부용산 가사에 “시상의 주무대인 벌교의 부용산노래를 원래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대로 돌려 놓아야할 책무는 우선 우리 벌교인의 몫이다”면서 “우린 이 일을 해내야 한다”고 강한 애착심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부용산 노래를 처음으로 푼 것은 안치환이 1997년에 낸 앨범에 작가 미상으로 나마 노래를 실었으며 가을편지의 가수 이동원이 음반에 취입·세상에 부용산이란 노래가 다시 봉인을 풀고 연극과함께 세상에 빛을 보게됐다. 

 

이날행사를 위해 벌교를 찾는 가수는 안치환을 비롯 미스트롯의진 송가인씨가 참석과 더불어 채동선합창단 실내악단 등 다수의 성악가들이 출동한다.

 

보성=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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