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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십조”…그 많은 국방비는 어디에 썼을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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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6 10:00:00 수정 : 2019-07-06 1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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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소형무장헬기(LAH)가 성능시험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KAI 제공

“역설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방위력 개선 사업비는 매년 늘고 있고, 현 정부 들어서도 엄청 증액됐어요. 그런데 국내 방산업체에 돌아가는 돈이 늘었느냐 하면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무기도입에 쓰이는 방위력 개선 사업비가 늘어나면 국내 방산업체는 그만큼 이익을 얻어야 한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같은 언급을 한 사람이 우리 군의 무기도입을 전담하는 방위사업청의 수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왕정홍 청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무기획득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같은 발언을 했다. 

 

왕 청장의 발언대로라면 2013년 10조원을 넘어선 뒤 매년 증가 추세에 있는 방위력 개선사업비가 국내 방위산업 발전에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걸까.

 

철매-2 요격미사일이 공중 표적을 향해 시험발사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낙수효과’ 누리지 못하는 방산업계

 

방위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발주처와 공급업체의 관계다. 무기를 사려는 측은 정부 하나뿐이지만, 무기를 공급하려는 업체의 숫자는 다양하다. 정부의 예산집행에 따라 방위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결정되는 ‘낙수효과’가 나타나는 구조다.

 

문제는 이같은 ‘낙수효과’가 언제부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센터장이 지난 5월 8일 여야 3당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민홍철, 백승주, 하태경 의원이 공동주최한 ‘방위산업 위기와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국방비는 2012년 33조원에서 2019년 46조7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국방비의 일부인 방위력 개선 사업비도 같은 시기 9조9000억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8년 방위력 개선사업비는 2017년에 비해 10.7% 늘어난 13조5000억원, 2019년에는 13.7%가 증가하는 등 방위사업청 개청 이래 최대 폭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방산업체의 생산 수준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10조8000억원이었던 방위산업의 생산 수준은 2015년 15조5000억원까지 급증했으나 2016년 16조4000억원으로 성장세가 둔화했다. 2017년에는 14조1000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14%나 감소했다. 2013년부터 증가세였던 국내 10대 방산업체 매출액도 2016년 11조4000억원을 기록했으나, 2017년에는 9조5000억원으로 16.7%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10조4000억원으로 반등했지만 2016년 수준보다 낮다. 주요 방산업체의 영업이익률도 2015년 5.6%에서 2018년 4.3%로 감소했다.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2018년 8.5%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약 2배나 차이가 난다.

 

방산업계의 현실이 악화되면서 방위산업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또다시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다. 사업 매각에 소극적이던 과거와 달리 이윤을 얻지 못하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은 현대 경영의 기본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은 2015년 7월 한화에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삼성테크윈(現 한화디펜스)와 전자장비를 만드는 삼성탈레스(現 한화시스템)를 넘기고 방위산업에서 철수했다. 두산도 2016년 K-21 보병전투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두산DST를 한화에 매각했다. 

 

국산 대포병레이더를 정비요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LIG 넥스원 제공

◆외국 도입 비중 증가…‘국부 유출, 산업 타격’

 

매년 늘어나는 국방비의 효과를 방산업계가 누리지 못하는 것은 외국에서 들여오는 무기의 비중이 증가한 것에 원인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직후 정부와 군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할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다. 국민은 수십조원의 국방비를 쓰고도 북한의 기습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와 군 당국은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대형 무기도입사업을 추진했다. 조기 전력화를 이유로 F-35A 스텔스 전투기, 해상작전헬기,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 등 굵직한 사업들은 해외에서 사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거듭하자 박근혜 정부도 패트리엇(PAC-3) 성능개량과 공중급유기 사업 등을 벌였다.

 

대한항공 정비사들이 주일 미 공군 F-15 전투기를 창정비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일반적으로 무기도입 사업 초기에는 전체 사업비의 30% 수준의 비용만 지급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기를 들여오는 시기가 되면 대금 지급 규모가 훨씬 커진다.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전임 정권이 발주한 무기도입 사업의 실제 대금을 현 정권에서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명박, 박근혜정부에서 시작된 해외 무기도입 사업 대금 중 절반 이상은 현 정부에서 집행된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2017년 국정감사 당시 방위사업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7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F-35A 사업에서 박근혜 정부가 집행한 돈은 1조9000억원 정도지만, 현 정부는 5조4000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KF-16 성능개량사업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2900억원만 집행되나 현 정부에서는 1조6000억원을 지불해야 한다.

 

주일 미 공군 F-16 전투기가 정비를 마치고 대한항공 격납고 앞에 주기되어 있다. 대한항공 제공

국방비 중 외국 업체에 지불되는 금액이 많을수록 국내 방산업체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 방산업체의 영업이익률이나 매출액 등이 2017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미국 무기를 사오면서 국내 방산업체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전이나 창정비, 부품공급 등 산업협력을 얻기 힘든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이 증가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무기체계에서 전자장비 및 소프트웨어 비중이 늘어나면서 단가가 계속 상승하지만, 이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국부 유출’을 가속화하는 원인이다. 정부 차원의 방위산업 진흥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무기 개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산화율을 높이면 부품업체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애리조나주 루크 기지 활주로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문제는 국내 조달만 고집하면 가격 상승으로 군이 요구하는 수량만큼 조달하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비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해외 업체의 무기에 비하면 국내 방산업계는 K-9 자주포 등 일부 무기를 제외하면 외국 무기보다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국내 연구개발 또는 생산을 고집해 무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아베 신조 정권이 F-35A의 국내 생산 규모를 줄이고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을 늘리는 등 해외 도입 비중을 확대, 일본 방위산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개발과정에서의 문제로 무기 도입 시기가 늦어져 전력증강에 차질을 빚을 우려도 있다. K-2 전차는 국산 파워팩 개발 문제로 전력화 시기가 몇 번이나 지연됐다. 개발이 진행중인 4.5세대 한국형전투기(KF-X)는 2020년대 후반에야 생산을 할 수 있으나, 5세대 전투기인 F-35A는 2020년대 초반이면 전력화를 완료할 수 있다. ‘무기도입사업은 군이 싸워 이기는데 필요한 장비를 조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국내 개발만을 고집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국방비 규모가 큰 나라에 속한다. 군사적 긴장이 높은 나라로서 무기조달 사업도 많이 진행된다. 하지만 국내 방위사업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면, 우리나라는 해외 방산업체에 혈세를 퍼주는 ‘글로벌 호구’가 될 수밖에 없다. 돈을 쓰더라도 현명하게 소비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정부의 방산정책 방향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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