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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건물 붕괴’로 예비신부 숨져… 또 ‘人災’인가

입력 : 2019-07-05 06:00:00 수정 : 2019-07-05 10: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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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 찾으러 간 날 ‘참변’… 안타까움 더해 / 철거 공사 전부터 ‘안전조치 미흡’ 가능성 제기 / 인근 주민 “먼지 많이 날렸다… 전날부터 징조” / 현행법상 철거 전 지자체장에게 신고만 하면 돼 / 신고제→허가제 개정됐지만 시행 내년 5월부터
건물 외벽 붕괴 사고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인명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서울 서초구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나가던 차량에 타고 있다 숨진 여성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철거 공사 전부터 안전 조치가 미흡했을 가능성이 제기돼 또 다시 ‘예고된 인재(人災)’가 발생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상5층·지하1층 건물 철거 작업 도중 붕괴

 

4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23분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지하 1층짜리 건물이 철거 작업 도중 붕괴했다. 이 사고로 현장 옆 왕복 4차로를 지나던 차량 3대가 무너진 건물 외벽에 깔렸다. 승용차 중 1대에 타고 있던 이모(29·여)씨가 매몰된지 약 4시간 만인 오후 6시33분 구조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씨와 함께 차량에 타고 있던 황모(31)씨는 중상을 입고 오후 5시59분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매몰된 차에서 수액으로 응급처치를 받은 황씨는 구조 당시 의식이 있었고, 대화도 가능한 상태였으나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의식이 혼미해졌다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이씨와 황씨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이날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 부친은 언론을 통해 ‘황씨가 예비신부 이씨가 숨진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얘기도 안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있다”며 “자기 품에서 죽은지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또 다른 승용차 1대에 있던 60대 여성 2명은 구조됐으며 경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굴착기 4대를 동원해 이 승용차를 덮친 30t가량의 구조물을 들어내고 구조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나머지 차 1대에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물에서 철거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 4명은 모두 대피했다.

 

건물 앞 왕복 4차로는 무너진 건물 잔해 등으로 한동안 차량 통행이 완전히 통제됐다. 사고 여파로 인근 전신주 3개가 도로로 쓰러져 이 일대가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해 복구작업을 벌였다. 전기 공급은 오후 7시10분쯤 재개됐다. 붕괴한 건물 옆에는 성형외과가 있었으나 환자 피해 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96년 준공됐으며, 6층짜리 근린생활시설을 짓기 위해 지난달 29일 철거공사를 시작해 이달 10일 완료 예정이었다. 소방당국은 인명구조견과 폐쇄회로(CC)TV 분석 등으로 추가 매몰자가 있는지 확인 중이다. 경찰은 현장 수습이 끝나는 대로 관계자들을 상대로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어제도 붕괴 징조”… 안전 심의 부결 전력

 

인근 주민들은 전날도 해당 건물 외벽이 붕괴 징조를 보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현장 인근에 산다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철거 현장이 걷기 힘들 정도로 먼지가 날려서 며칠 전부터 ‘공사를 서두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공사가) 시간에 쫓긴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건물은 또 철거 공사에 들어가기 전 안전 심의가 한 차례 부결돼 재심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규정에 따르면 시내의 지상 5층 또는 13m 이상, 지하 2층 또는 깊이 5m 이상 건물을 철거할 땐 사전 안전 심의를 받고 감리를 거쳐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자치구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외벽 붕괴 현장에서 119 구급대원과 관계자들이 야간 탐색 및 붕괴 잔해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건물은 재심 끝에 사전 안전 심의를 통과하고 철거 감리인도 둔 것으로 파악됐다. 서초구 관계자는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1차 심의 때 부결돼 2차 때 보완해서 재심을 청구했다”며 “정확한 부결 이유는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초구는 해당 건물이 구청에 신고한 대로 가림막을 설치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철거 공사 과정에서 안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현행법상 건축물 소유자나 관리자는 철거를 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해야 하는데, 신고만 하면 되는 탓에 철거 현장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발생한 서울 종로구 낙원동 숙박업소 건물 붕괴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이 사건 직후 철거 사전심의제와 상주감리제를 도입했지만, 현행 신고제 아래선 철거를 강제적으로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내년 5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 전역 철거 현장의 안전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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