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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경제 보복 '덫'…대응책 고심 깊은 정부

입력 : 2019-07-04 06:00:00 수정 : 2019-07-03 23: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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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WTO 제소 위한 법률 검토작업 / 日 4일부터 핵심소재 등 韓 수출 규제

일본 정부가 4일부터 반도체 핵심 소재(素材) 등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서기로 하자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위한 법률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3일 통상 당국자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WTO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수출통제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련 법률을 검토 중이다. 이 당국자는 “일본의 조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1994) 제11조를 위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가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가운데 지난 1일 오후 수출상황 점검회의가 열린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굳은 얼굴로 관련 업계 대표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GATT 제11조는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수입·수출의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수입·수출의 수량 제한이 관세보다 쉽게 무역 제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부품·장비 개발에 약 6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의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책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2020년부터 10년간 1조원을 투입하는 사업은 이미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고, 일반 소재·부품·장비의 경우 2021년부터 6년간 5조원을 투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예타가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의 경우 산업부가 7년간 5200억원을, 과기부가 10년간 4800억원을 각각 투입할 계획이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관련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며 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NHK방송을 통해 중계된 당수토론회에서 “역사 문제를 통상 문제와 관련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뒤 “징용공 문제라는 것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을 두고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위안부 문제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에 따른 사실상 보복성 조치라는 점을 인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뒤늦게 대응 나선 당정청

 

3일 국회에서 고위 당정청협의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3일 고위당정청협의회를 열고 반격에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나서 연일 공세를 벌이자 뒤늦게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협의회에서 일본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며 “민관공동대책 수립 등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협의회 직후 브리핑에서 “이달 중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날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우리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우리 정부가 일본의 보복조치를 예상한 ‘롱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공개했다. 김 실장은 “지난 일요일 관련 소식을 접하고 안면이 있던 5대 그룹 부회장에게 연락해 그룹별로 추가조치 예상 품목과 정부에 요청할 사항을 제출받았다”며 “삼성전자에서는 직접 만나 얘기하자는 요청이 왔고 사장 2명 등 최고위층 4명을 만났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약 70개, 메모리 반도체는 약 500개의 공정이 있는데, 이걸 다 거쳐야 완제품이 된다”고 ‘롱 리스트’ 작성 경위를 설명한 뒤 “그중에서 1, 2, 3번째에 해당하는 부품이 이번에 일본이 규제한 품목들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것들인 만큼 잘 대응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청와대가 예상 보복 리스트 작성 사실 등을 공개하며 적극 해명에 나선 격이다. 그러나 “당하고 나서 리스트가 무슨 소용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에서 야당은 정부의 준비 부족과 책임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해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통위원장인 한국당 윤상현 의원도 “대통령이 특사단을 파견하거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일본 측을 비밀리에 접촉해서라도 풀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은 “우리 혼자 힘으로 안 된다면 우방국을 통해서라도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안 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의연·냉정한 대응을 주문했다. 박병석 의원은 “우리가 감정적 대응을 보이는 것은 한·일관계를 정립하는 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불합리하고 상식에 반하는 보복조치”라며 “(일본에) 자제를 요청하면서 보복조치를 철회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日 전문가도 “WTO 협정 위반” 아베의 무리수 비판

 

일본의 국제경제법 전문가인 후쿠나가 유카(福永有夏·사진)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로 실제 한국에 대한 수출 물량이 제한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신문과의 일문일답.

 

-일본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나라에 정책 변경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무역조치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과 같다. 비판해야 할 처지인 일본이 비슷한 일을 한 것은 유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WTO에 제소할 태세다. 일본은 국제 룰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서 보면 문제가 없나.

 

“WTO 협정의 기본원칙의 하나는 회원국을 대상으로 관세 등에 따르지 않는 수출입 수량의 제한을 금지하는 것이다.(GATT 제11조). 이번처럼 수출 허가 절차를 엄격히 하는 것만으로는 당장 11조에 위반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신청해도 수출 허가가 나오지 않는 사태에 의해 수출이 실제로 제한된다면 위반이 될 수 있다.

 

WTO 협정의 또 하나의 기본원칙은 ‘최혜국 대우(MFN)’(1조)다. 어떤 회원국에 대한 가장 유리한 조치는 다른 모든 회원국에도 줘야 한다. 실제로 수출이 제한되지 않더라도 다른 WTO 회원국에 대한 수출은 간략한 절차로 끝나는데 한국에 번잡한 절차를 요구하면 MFN 원칙 위반으로 간주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WTO 협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역 제한은 안전보장상 필요하면 예외조치로서 정당화된다(21조). 일본은 안보상의 예외로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21조는 안보를 명목으로 한 조치를 자유롭게 하라는 ‘프리핸드(Free Hand·자유재량)’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조건에 따라 조치를 발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안보상의 예외규정을 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남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발동에 신중히 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WTO 협정에 위반하거나 21조의 예외조치로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주 그레이(Gray·회색)다. 무엇보다 정책 실현을 위해 무역조치를 이용한다는 것은 일본이 지금까지 표방하고 보호주의가 만연한 국제경제 질서에서 일본이 주도해야 할 ‘공정하고 무차별적인 무역’이나 ‘다각(多角)주의’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우상규· 이귀전·곽은산·박현준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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