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던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홍콩 정부가 역풍을 맞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가장 큰 내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 사퇴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홍콩 정부는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을 석방하며 민심 다독이기에 나섰다.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8, 29일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시 주석과 홍콩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지난 16일(현지시간) 밝혔다. 미 폭스뉴스의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한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G20에서 시 주석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이 문제(홍콩)는 두 정상이 논의할 주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G20에서 홍콩 사태를 거론한다면 시 주석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미 사법 독립과 피고인 방어권 보장 등이 취약한 중국 사법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내정간섭 반대”라는 논리는 군색하다.
특히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대미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홍콩’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시 주석 행보를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미 의회는 이미 “홍콩에 대한 기존 특별대우를 매년 재평가하겠다”며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그렇다고 시 주석이 G20 담판을 회피할 수도 없다. 미국은 만남이 불발된다면 3000억달러 상당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공청회 개최 등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뉴욕타임스는 “홍콩 사태는 시 주석의 절대권력 체제에도 불구, 본토 밖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배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람 장관의 향후 거취도 관심이다. 람 장관은 지난 15일 법안 처리 보류를 발표하면서도 사과는 거부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200만명의 시민이 다시 시위에 나서자 “많은 시민을 실망하게 하고 괴롭게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행정 장관과 홍콩 정부의 법에 따른 통치를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람 장관 사퇴 가능성은 작지만, 홍콩 사태가 봉합되지 않는다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난 주말을 거치며 중국 정부 내부 분위기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민심을 다독이는 방향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것에서 변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웡이 이날 오전 홍콩 라이치콕 구치소를 나왔다고 전했다. 그의 출소는 람 장관 사퇴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이뤄진 조치인 만큼 홍콩 정부의 화해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주까지 시위 강경 진압을 지지했던 관영 매체 논조에도 변화 흐름이 감지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논평에서 “홍콩 시민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지키며 홍콩 번영을 위해 힘을 모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 14일부터 중국 내 주요 도시에서 완전히 차단됐던 한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접속이 이날 복구됐다. 지나친 인터넷 통제에 따른 비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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