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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김홍걸 업고 여성 인권운동… 정책 기초 닦아”

입력 : 2019-06-12 20:11:17 수정 : 2019-06-12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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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남 교수가 말하는 ‘여성운동가 이희호’ / “1960년대 여성운동 함께 펼쳐 / 성희롱예방교육 등 제도 영향 / 세대 아우른 최고의 여성운동가” / 빈소 둘째날 이재용·김현철 찾아 / 전두환 부인 이순자 여사도 조문

“한국 여성사의 획기적인 발전은 선생님(이 여사) 시대에 이뤄졌어요. 여성가족부를 신설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그분 덕분에 여성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정비됐죠.”

지난 10일 밤 소천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해 동국대 백경남(여·78·사진) 명예교수는 12일 이같이 회고했다. 이 여사는 백 교수가 대학 졸업 후 첫 인연을 맺은 ‘선배 여성운동가’였다. 두 사람은 1960년대 여성문제연구회에서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함께 일했고 지난해까지 안부를 주고받았다.

백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성관에는 선생님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그분은 평생 여성과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다”고 강조했다.

이 여사와 백 교수는 1965년 남산타워 인근의 여성회관 옥상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 은사의 소개로 여성문제연구회를 찾아간 백 교수에게 이 여사는 갓난아기를 업고 나왔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돌 무렵일 때였다. 당시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후 ‘여성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여성소비자 운동’과 ‘여성의 정치참여 운동’을 벌였고, 그때의 인연은 평생 이어졌다.

1970년대 이희호 여사가 백경남 동국대 명예교수에게 보낸 자필 편지 내용. “나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 오로지 주님에의 믿음이 나를 오히려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경지로 이끌어줬음을 기뻐할 뿐”이라며 안부와 다짐을 전하고 있다. 백경남 교수 제공

백 교수는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김대중정부의 여성정책을 주도했다. 그는 “제가 추진했던 모든 정책은 이 여사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여성 정책의 현대적 기초가 그때 만들어졌고 그분은 여성계의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이 여사가 소천한 다음 날 백 교수도 빈소를 찾았다. 옛 동지들을 찾아봤지만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여사의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노환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거겠죠”라며 “선생님은 제게 만큼은 모든 세대를 아우른 최고의 여성운동가예요. 정치 발전의 굴곡이 없었다면 진작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아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조문하고 있는 모습. 이제원 기자

이 여사의 조문 둘째날인 이날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빈소를 찾았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는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여사님이 미투 운동에 대해 ‘여성들이 위축될 수 있으니 더 당당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며 “여사님은 여성운동의 선각자”라고 말했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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