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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숙아를 낳다니”… ‘심리적 고립감’에 엄마도 아프다 [탐사기획 - 이른둥이 성장 추적 리포트]

입력 : 2019-06-12 09:02:00 수정 : 2019-06-12 1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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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조산·정보 부족에 당혹 / 자녀 건강 염려에 산후조리 ‘먼 얘기’ / ‘이른둥이’ 이유만으로 주변서 비난 / 아기 발달 묻는 질문에도 ‘스트레스’ / 자책감·낮은 사회적 인식 등에 상처 /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 필요” 목소리

‘이른둥이 엄마가 아프다.’

세계일보 취재팀이 지난 5월14일부터 약 2주간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많은 ‘이른둥이 맘(엄마)’은 이른둥이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심리적 고립감’을 호소했다. 자녀의 건강과 성장 문제를 염려하느라 정작 본인의 신체·정신적 건강은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조산, 그리고 이른둥이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오는 당혹감과 이른둥이를 낳았다는 자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한 이른둥이 엄마는 11일 “마치 잔혹한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로 깊은 상처를 드러냈다.

◆‘내가 미숙아를 낳다니’… 산후조리는 먼 얘기

이른둥이 출산은 대개 산모 본인과 태어난 아기에게도 예기치 못한 일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조기 진통, 갑작스러운 태반 박리, 임신중독증, 스트레스 등 미리 대비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분만대나 수술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아기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진전되는 동안 이른둥이 엄마들은 당혹스럽다. ‘만삭으로 건강하게 아기를 낳을 것’이라던 기대가 무너진 데다 이른둥이 육아에 대한 준비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른둥이 엄마들은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른둥이 엄마의 10명 중 거의 9명(87.9%)은 이른둥이 출산 후 슬픔, 분노, 우울과 같은 감정이 1주일 이상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 중 대다수는 ‘자녀의 건강에 대한 염려’(92.5%·중복응답 가능)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인한 준비 부족, 이른둥이 육아에 대한 정보 빈곤에 따른 혼란 등도 각 65%, 63.3%로 절반이 넘었다.

최근 임신 29주차에 둘째 아들을 이른둥이로 출산한 여성 A씨는 “이른둥이를 낳기 전에는 ‘폐가 미성숙할 수 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 몰랐는데, 막상 출산하고 나니 조심해야 하는 질병이 너무 많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특히 태어난 자녀가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료진의 경고를 듣고 난 엄마들의 충격은 더욱 크다.

여기에 처리해야 할 일도 산더미다. 아기가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입원하자마자 기저귀, 물티슈, 각종 영양제 등 이른둥이 전용품을 구입해야만 한다. 병원 입원비와 수술비, 각종 치료비 지원을 위한 정책을 알아보고, 관련 서류를 마련해 신청하는 것도 이른둥이 부모의 몫이다. 매일 30분 정도라도 아기 얼굴을 보기 위해 해산한 몸을 이끌고 병원 면회만 기다린다.

이쯤되면 이른둥이 엄마의 상태는 거의 ‘탈진’에 가까워진다. 산후조리는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다.

지난해 한국아동간호학회지에 실린 ‘신생아의 신생아집중치료실 입원에 대한 어머니 경험’ 연구에 따르면 이른둥이 엄마들은 실제로 산후조리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른둥이 아기를 낳은 충격 등과 더불어 아기의 입원에 따른 미안함과 죄책감에 따른 일종의 ‘자기처벌’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이른둥이를 낳은 여성들이 출산 후 ‘아기가 아픈데 엄마인 나는 산후조리를 할 자격도 없다’는 식의 자책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작다’는 얘기 듣기 싫어요”

이른둥이 엄마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데에는 이른둥이에 대한 주변의 편견에서 비롯한 일들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둥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이나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른둥이 엄마 134명 가운데 18.7%가 “이른둥이 출산과 관련해 가족이나 주변인으로부터 폭언 등 비난을 들은 경험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상심했을 이른둥이 부모한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전해줘야 할 가까운 사람들이 되레 ‘날’을 세우고 아픈 곳을 찌른다는 의미다.

비난의 목소리는 다양했다. 이른둥이 엄마들은 “네가 임신 기간 중 밥을 잘 먹지 않아 아기가 작은 것이다”, “우리 집안에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참 이상하다”, “왜 그런 문제(조산)가 생기는 거니”, “아기가 이렇게 작아서 어떻게 키워” 등 가족이나 이웃이 무심코 쏟아낸 말이 마치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처럼 들려 불편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또 아기의 체중이나 키, 발달 상태를 화제로 삼는 것 자체로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호소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른둥이 엄마 B씨는 “‘왜 빨리 나왔어?’ 라며 아기가 일찍 태어난 이유들에 대해 주변에서 궁금해하는 게 무척 힘들었는데, 그 뒤에는 또 ‘옹알이는 하느냐’, ‘뒤집기는 왜 아직 못하냐’ 등의 질문이 이어져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아기가 왜 이렇게 작으냐’, ‘너무 작아서 반려견인 줄 알았다’ 같은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른둥이 부모들에 대한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른둥이 출산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른둥이 아기를 ‘어딘가 결여된 존재’로 보는 시선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 기반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조산이 아니라 가족·주변의 편견”

 

“이른둥이 출산을 왜 숨겨야 하나요. 건강하게 키운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10년 넘게 아기들을 돌본 전지현(사진) 강남차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1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둥이 부모들이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른둥이 아기한테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려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가 이렇게 이른둥이에 대한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건 얼마 전 열린 이른둥이 부모 대상 행사를 겪고 느낀 게 있어서다. “병원에서 매년 이른둥이 부모님들 모시고 자조모임이나 행사를 갖는데 몇몇 부모님께서는 오는 걸 꺼리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보니 ‘(자녀에게) 이른둥이였다는 사실을 숨겼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전 교수는 이런 이른둥이 부모들의 태도를 “이해한다”고 했다. 이른둥이라는 사실이 장차 아이의 삶에 ‘결격사유’로 작용될까봐 염려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른둥이로 태어난 많은 아이는 나중에 이른둥이였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자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른둥이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관련해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이른둥이 출산의 책임을 많은 부분 산모한테만 돌리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료를 보러 온 많은 어머님이 조산한 것 자체에 대해 매우 자책한다”며 “이면에는 가족과 주변의 편견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댁에서는 이른둥이 출산의 원인을 며느리로 단정짓고, 친정에서는 딸의 치부로 여기면서 주변에 숨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 “조산의 원인은 딱 집어 ‘이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며 “(조산 자체는) 안타까우나 아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최선의 상태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편견이 사라져야 이른둥이 아기들이 장래 사회 구성원으로 더욱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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