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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시대… 국가에 ‘돌봄’ 요구 / 사회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해봐야

아직도 부모들이 희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배움 없이 자식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사랑만 베풀었던 시절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 자식 사랑이 그럴진대 다른 관계는 오죽하랴. 가정·학교·사회 모두 ‘나 지키기’만 강조하기 때문일까.

누군가에 대한 헌신과 돌봄마저 때론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다. 믿음과 사랑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관계에 헌신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세상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무심하다. 홀로 지내는 것이 편해서 각자의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살다 보니 갑자기 내 인생에 들어오는 낯선 사람이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론 위험한 적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아도 결핍감에 시달리는데 내 것을 빼앗거나 함부로 대할까봐 방어적인 자세를 하기도 한다.

거꾸로, 매력적인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혹시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공격할까봐 멈칫거리기 십상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 이런저런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니 사랑이나 우정도 즐거움보다는 부담이나 감정 노동으로 비친다. 외로움 때문에 서로를 깊이 알 필요는 없는 가벼운 모임에 나가 보긴 하지만,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니 헤어지고 나면 시간만 낭비한 것 같고 허무함만 다가온다. 그렇다고 늙고 병든 나로 인한 불편함이나 고통을 가족이 감내하며 도와줄 확신은 더욱 없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결혼, 양육비도 건지지 못하는 육아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권위적인 가부장제가 정상적인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일방적으로 약자의 희생을 강요한 탓일까. 이제는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론 피로 얽힌 가족애마저 부담스럽고 어색한 세상이 된 것 같다. 한 예로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장남을 비롯한 자식이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노인 부양시설을 짓고 운영하기 위해 월급에서 그만큼 공제하겠다고 하면 응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노후를 위해 지금 높은 세금 혹은 연금을 내라고 하면 반발하지 않을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인간은 질병과 사고와 노화 앞에서 약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 살다 보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결국 찾아온다. 급격한 속도로 가족이 해체 붕괴되는 한편 그를 대신해 줄 대체 가족은 없으니, 사회나 국가가 안전판이길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그 대가를 치르기는 싫은 것이다.

하지만 한없이 헌신해 주는 어머니처럼 국가나 조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 ‘모성 콤플렉스’다. 현실의 부모가 보이는 헌신적 사랑이 사라진 만큼 이를 대신할 사회적 제도에 대한 기대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것뿐이다. 슬프게도 부모를 대신해 어린 양하는 우리를 챙겨줄 기관이나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어머니도 찾기 힘든데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의 조직과 다양한 욕망을 한꺼번에 다뤄야 할 국가가 무엇 때문에 특정 구성원을 위하고 보듬기만 하겠는가.

수 십 년 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흉내 내자면, ‘사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기 이전에, 나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각자 묻고 실천해야 그나마 각박한 이 사회의 붕괴를 막을 것 같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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