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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거짓말의 패러독스

팩트체크, 이미 세계적 트렌드로 / 얼굴 마주보고 대화할 기회 줄며 / SNS 공간 왜곡·편견·조작 판쳐 / 거짓정보 분간해 낼 힘 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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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7 23:09:51      수정 : 2019-05-17 23:09:52

미국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는 괴팍한 ‘팩트체커’다. 그는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불법을 마다 않고 환자의 집 문을 따고 뒷조사를 한다. 환자의 거주지나 직장의 환경을 조사하거나 몰래 신상정보를 캐내서 가족력이나 병력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환자가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이나 환자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찾기 위해서다.

오진은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는 ‘팩트’에 근거한 진단만이 정확한 치료를 가능케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캐릭터가 갖는 매력은 ‘사람은 다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 아래 팩트체크를 통해 진단과 치료를 향해 매진하는 과도하게 까칠하고 괴팍한 열정을 가진 사나이라는 데 있다.

박치완 한국외대교수 문화콘텐츠학

최근 ‘팩트’를 서비스하는 언론계에서조차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하우스의 주장대로라면 우습게도 ‘언론은 다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를 성립시킨다. 그런데 이미 팩트체크는 국내만의 트렌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팩트를 체크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 독립전문가 집단이 활동 중이다.

더구나 이 용어는 199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 탐사보도전문기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요즘 들어서 트렌드화된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영국에서는 ‘풀팩트’가 2009년에 닻을 올렸고, 2012년에는 ‘아프리카체크’가 결성돼 아프리카의 독립언론으로서 유럽언론계로부터 주목받았다.

2014년 유럽연합(EU)에서는 가입국이 팩트체크를 상호공조하는 플랫폼으로 ‘팩트체크이유’를 만들기도 했다. 2015년 포인터연구소가 주축이 돼 결성된 ‘국제팩트체크네트워크’에서는 매년 글로벌팩트체크대회까지 개최하고 있다. 2018년 제4회 마드리드대회에서는 매년 4월 2일을 ‘국제팩트체크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팩트체크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를 잡다보니 “팩트체커를 믿지 말라”는 웃지 못할 반박기사가 톱뉴스가 되기도 한다. 팩트체커를 재체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최근에는 팩트체크 로봇까지 개발돼 테스트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팩트를 체크한다고 로봇까지 가세한다고 과연 가짜뉴스는 완전히 사라질까. ‘사실’만을 보도하는 뉴스로 지면과 화면이 넘칠 수 있을까.

팩트체킹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프레스트위치 스콧은 1929년 ‘맨체스터 가디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의견은 자유로운 것이나 팩트는 신성한 것이다.” 이 신성한 팩트를 다루는 일을 기계에 일임해도 되는 것인지, 팩트체크라는 트렌드가 특정 방송사의 브랜드가 될 만한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연약하고 별 볼일이 없던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별의 패권자가 된 것은 뒷담화와 수다의 능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또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가 약 150명이라는 과학적 연구결과도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실제 150명이 넘는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미 호모사피엔스의 원동력이었던 뒷담화와 수다의 효율적 인간관계의 자연적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천 명의 ‘페친’과 수만 명의 팔로어와 교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이와 같은 새로운 공간은 이제 ‘언론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를 ‘사실화’하고 있다.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은 왜곡, 편견, 맹목, 위선, 사기, 조작으로 가득 차 있다.

하우스의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거짓정보를 분간해내지 못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 모두가 팩트체커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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