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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 된 언어폭력, 사회를 병들게 해 /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부메랑될 것

선진국이 됐는데도 아직 비속어나 인격모독적 언어를 서슴지 않고 쓰는 이들이 많다. 무슨 뜻인지 모른 체 멋있다고 흉내 내는 청소년도, 소외감으로 막말하는 노인도 아닌데 말이다. 전쟁과 독재로 사회가 지옥이었던 시절엔, 살기 위해 말이 더 극단적으로 나갔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피눈물을 겪었던 사람도 아니면서 판단력도 변별력도 없이 언어폭력을 일상화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들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폭력적인 언행을 써서라도 허약한 자존심을 보호하려고 하는 경우다. 조폭이나 비행청소년에게 주로 해당되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권력이나 돈으로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위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서도 종종 보인다. 이런 식의 자기과시는 내재하는 열등감과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다. 내가 말을 세게 하지 않으면 나보다 힘센 누군가에게 패배할까봐 일단 격한 표현을 써야 안심한다. 거칠게 말해야 관심도 받고 존재감도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다.

공통의 비속어를 통해 동질감을 확인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막말이 일종의 소속감을 주는 것이다. 청소년이나 거리의 사람이 아니래도 미숙한 집단끼리 진영싸움이 일어나면 더 세게 말하는 이에게 큰 힘을 실어 주니 오가는 말이 점점 거칠어진다. 상대와 대적하면서 내부가 더 단결하는 것 같아 상승작용으로 욕의 수위도 점점 높아진다.

막말 이외에는 분노나 공격성을 표현할 줄 모르는 무지함과 상상력의 부재가 원인이기도 하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책 하나 읽어 본 적 없고, 제대로 된 토론수업 한 번 받아 본 적 없이 상스럽게만 살아 왔다면 거친 입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 리가 없다. 거리에서 욕설을 배우기도 하지만, 학대받으며 성장해도 폭력적인 언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나친 과잉보호로 잘못된 언행을 제지받지 않고 자라도, ‘배려 없음’을 ‘자기애적 방어 수단’(narcissistic defense mechanism)으로 습관처럼 사용한다. 귀하게 자란 이들이 갑질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엉터리 심리학책을 읽고, 스스로의 ‘자아(Ego)’를 신으로 섬기면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힘을 과시하거나 세력을 모으는 것에만 모든 가치를 두어서 공동체의 조화를 위한 겸손을 ‘열등감에 의한 눈치 보기’라고 매도하고, 공감능력의 부족을 ‘당당함’이라 착각하고, 편 가르는 폭언을 ‘충성심’과 ‘용기’로 포장한다.

당장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습관적인 막말은 결국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힘없다 생각했던 상대방이 언젠가는 원한을 되돌려 주기도 하고, 자녀나 후배가 자신을 모방해서 결국 사회부적응자로 둘러싸이게 된다. 상처가 심하다면 가족이라도 떠나는 게 최선일 수도 있으니 욱하는 성격은 외롭지 않은 노년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다스려야 한다.

막말하는 타인을 운 나쁘게 만났다면, 법이나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 상대방의 막말이 내 소유가 아니라 그들의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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