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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면접인데도 “지방대” 콕 집어… 말뿐인 공정 채용 [연중기획-청년,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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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5 10:00:00 수정 : 2019-05-15 14: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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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에 우는 고졸·지방대생 / ‘스펙’ 갖춰도 대기업 서류 통과 별따기 / “지역 우수대 평에도 ‘지잡대’ 취급” 한숨 / ‘공시생’·취업 잘되는 전문대 재입학 ↑ / 고졸자 취업률 하락세… 특성화고 미달 / 기업에 지역 인재 35% 이상 채용 권고 / 강제성 없어 채용 비율 10% 내외 그쳐 /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中企 취업 장려금 / 정부·지자체, 일자리 정책 잇따라 발표

“지방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미 취직했을 거예요. ‘인서울’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광주광역시 한 국립대 공대를 졸업한 뒤 2년째 취업에 매달리고 있는 김모(27)씨는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필기를 여러 차례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김씨는 면접 때마다 “서울에 근무하면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블라인드 면접인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면접관들의 질문은 능력보다 지방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소위 ‘지방대’ 꼬리표를 떼기 위해 대학생활 내내 자격증과 어학 실력 등 이른바 ‘스펙’ 쌓기에 부단히 노력했기에 돌아오는 실망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지방대 출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취업 현장에서의 차별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졸업생들의 취업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지방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악화시키고 지역균형발전까지 저해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나아가 사회생활에서도 주홍글씨가 돼 평생 그림자와 같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

 

◆‘공정한 인재채용’ 말뿐, “대기업 면접기회라도”

부산의 한 국립대 출신 취업 준비생 이모(31)씨는 14일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이씨 역시 대기업에 원서를 넣을 때마다 서류 전형부터 탈락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재학시절 내내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하고 자격증도 10개가 넘게 취득한 선배가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슷한 스펙의 수도권 대학 출신 지인이 대기업에 합격하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이씨는 “지역에서는 좋은 대학이라고 평가받지만, 대기업 입사에서는 그냥 ‘지잡대’로 취급될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지방대생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블라인드 면접 제도를 도입했지만, 당사자들이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지난해 2030세대 843명을 대상으로 취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물은 결과 절반가량인 43.9%가 ‘학벌·학력 등 스펙’을 1순위로 꼽았다. 최근 금융권 채용 비리에서는 서울지역 대학 출신자 합격을 위해 지방대 출신 지원자들의 면접 점수를 하향한 사실이 드러났다.

능력에 상관없이 지방대 꼬리표를 달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지방대생 중 상당수는 비교적 출신지나 학벌의 영향을 덜 받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남의 한 국립대에 재학 중인 이모(24)씨는 군 제대 후 복학한 뒤 전공을 살리려던 금융권 입사를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눈을 돌렸다. 이씨는 “공무원 시험이 어려워도 차별 없이 실력만 쌓으면 오히려 합격하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취업문 뚫어라’ 학력 U턴에 학력 낮추기도

지방대 졸업생 중에는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해 재입학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3년 전 대구지역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김모(27·여)씨는 올해 유명 미국 안경조제가공회사 취업에 성공했다. 지방대 졸업장이 취업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자 전문대 안경광학과에 재입학한 ‘학력 U턴’이었다.

‘지방대 졸업장’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 대전의 한 사립대학 전기공학과에 재학 중인 최모(28)씨는 3학년 2학기를 마친 뒤 휴학하고 울산의 한 대기업 정유업체 생산직 입사에 매달리고 있다. 최씨는 “지방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고졸로 학력을 낮추더라도 연봉이 높은 기업에 지원하려는 것”이라며 “입사가 최종 결정되면 대학을 퇴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최씨처럼 취업이나 수도권 명문대 등에 재입학하기 위해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4년제 대학생 비율은 지난해 전국 평균 4.5%(9만3871명)로 나타났다. 2015년까지 4.1%대에 그치던 것이 점차 늘어났다. 특히 지방대는 5.2%로 서울·경기·인천(수도권)의 3.4%보다 훨씬 높았다. 중도탈락 학생 수가 1000명을 넘는 대학이 9곳이었는데, 모두 지방대였다.

고졸자들이 일자리를 얻기란 더욱더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발표한 중장기(2016∼2026)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노동시장에서 고졸 인력 초과수요는 113만명으로 대졸 이상 인력(75만명)을 크게 앞질렀다. 전국 2070여개 고교는 졸업 이후 사회 진출을 위해 다양한 진로체험 학습을 하고 있으나,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고졸 학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군 복무, 기업의 고졸 채용 기피 등으로 일자리 여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전국 지방 특성화고마저 절반가량이 2019학년 입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미달사태에 봉착했다.

 

◆정부·지자체 ‘지역 청년 챙기기’ 나서

정부는 2014년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공기관과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이 신규채용인원의 35% 이상을 지역 인재로 채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권고조항에 불과해 지역인재 채용은 10% 내외에 그쳤다. 최근 국회 도종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지역인재 채용비율을 4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최근 지방의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부터 지방 이전 공공기관 신입 직원 선발 시 지역 인재를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토록 했다. 지난해 이전 공공기관의 신규채용 인원 6076명 중 지역 인재로 뽑힌 인원은 총 1423명(23.4%)으로 당해 목표(18%)를 넘어섰다. 2022년까지 목표한 채용률은 33%다. 문제는 지역별 편차가 심해 부산은 32.1%나 되지만, 세종은 3.2%에 그쳐 지역별 편차를 극복하는 게 과제다.

정부는 올해 초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고졸 공무원 채용 비율을 늘려 취업을 확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직업계 고교 취업률을 2022년까지 6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특히 지난해 2학기부터는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지원 사업을 도입해 중소기업에 6개월 이상 재직하면 일시금으로 1인당 연간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의 지원자는 2만6000명으로 정부가 계획한 2만4000명을 초과해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전북 남원시는 2014년부터 지역 고졸 미취업자들이 대도시로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키며 일할 수 있도록 ‘지역 청년 취업 할당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5년간 지역 내 16개 기관·기업에 87명이 취업했다. 이는 이들 기관·기업의 신규 채용 인력(131명)의 66.4%를 차지한다.

전북대 최백렬 교무처장(상과대 교수)은 “지방대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역산업 혁신을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게 급선무”라며 “실용적인 연구성과를 도출해 지역 기업과 공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토록 하는 상생발전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광주·부산·대구=김동욱·한현묵·이보람·문종규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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