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애타는 장애인 부모들 [이슈+]

입력 : 2019-05-08 20:23:39 수정 : 2019-05-08 22:21: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서울 특수학교 2곳 설립 난항 소식에 속앓이만

“다시 한 번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 할까 봐요.”

 

뇌병변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딸을 둔 A(여)씨는 어버이날인 8일 이 같이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A씨는 딸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지만 그가 사는 서울 동대문구에는 특수학교가 단 한 곳도 없다. 인근 중랑구에 2022년 동진학교(가칭)가 개교한다는 말을 듣고 한 줄기 희망이 생겼으나 최근 서울 지역 특수학교 설립이 잇따라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A씨는 마음이 무거워

눈물의 호소에도… 2017년 9월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안을 놓고 벌어진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채 특수학교를 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졌다고 한다.

 

대부분 장애학생 부모들은 요즘 A씨와 같은 심정이다. 2017년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앞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한 일로 서울 강서구와 중랑구에 각각 서진학교와 동진학교 설립 계획이 확정됐지만 최근 들어 잇따라 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서진학교의 경우 지역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결국 개교 일정이 미뤄졌고, 동진학교는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으로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정한 동진학교 예정부지에는 이례적으로 ‘특수학교 설립을 환영한다’는 현수막까지 등장했으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기자가 찾은 중랑구 신내동 동진학교 설립 예정 부지에는 “이 곳에 특수학교(동진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한 장애인부모단체 관계자는 “부지 소유주들이 특수학교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은 아마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부지 소유주 환영에도… 8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특수학교(동진학교) 예정 부지에 학교 설립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주영 기자

중랑구청은 해당 부지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특수학교와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쓸 수 있는 주민편의시설을 짓자는 입장이다. 중랑구 관계자는 “동진학교 부속시설로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인근 주민도 쓸 수 있는 개방형 장애복지센터까지 같이 제대로 짓자고 시교육청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중랑구의 이런 제안과 관련해 장애학생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검토 중이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그러나 동진학교가 시교육청 예정 부지에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교 일정이 늦춰질까봐 불안해 하는 것이다. 정순경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대표는 “이미 정해진 부지가 있는데 구청이 다시 대체부지를 들고 나오니 특수학교가 시급한 아이들 입장을 생각하면 답답할 따름”이라며 “인근 지역 장애학생 부모들은 이러다 개교 일정이 늦춰질뿐만 아니라 설립 자체가 흐지부지될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릎 호소가 있었던 강서구 서진학교는 개교 일정이 오는 9월에서 11월로 두 달 늦춰졌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지역 주민들의 항의와 민원 제기가 반복되면서 완공이 지연된 게 한 이유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진학교를 일단 개교한 뒤 마감공사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학생들 안전을 우선해 개교를 미루게 됐다”며 “개교 일정이 조금 더 미뤄질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11월보다 개교가 늦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서진학교와 동진학교 설립이 난항을 겪으면서 서울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한다는 시교육청의 계획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기준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 특수학교가 없는 구는 금천구, 동대문구, 성동구, 양천구, 영등포구, 용산구, 중구, 중랑구 등 총 8곳이다. 해마다 느는 장애학생(특수교육 대상자)에 비해 특수학교 신설 속도가 더디면서 특수학교의 장애학생 수용 비중은 매년 조금씩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할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한진 대구대 교수(장애학)는 “행정 담당자들이 특수학교를 지어도 손해 보지 않는다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준수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특수학교를 말 그대로 특수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나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전문성 있는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박유빈 기자 buen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