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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시집 해설은 따뜻한 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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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03 21:31:48 수정 : 2019-05-03 21: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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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세계서 최다 시집 펴내 / 1970년대부터 해설 일반화 / 지인은 사적으로 발문 쓰고 / 비평가는 숨겨진 장점 적어

시인들로부터 시집을 받아볼 때마다 말미에 붙은 해설을 보게 된다. 우리는 세계에서 시집이 가장 많이 출간되는 나라에 산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시집 전성시대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스럽게 읽고 있는 시집 해설의 역사가 그리 만만치 않다. 근대 이후에는 지인의 서문이나 발문이 들어 있는 경우, 시인 자신이 직접 서문이나 발문이나 후기를 쓰는 경우, 아무런 글이 없고 작품만 실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 유명한 ‘정지용시집’(1935)의 ‘발문’을 박용철이 쓰고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서문’을 정지용이 쓴 것이 첫 번째 사례이고, 한용운이 ‘님의 침묵’(1926)에 ‘군말’과 ‘독자에게’를 쓰고 박인환이 ‘박인환선시집’(1955)에 후기’를 쓰고 서정주가 ‘서정주시선’(1956)의 ‘자서’를 쓴 것이 두 번째 사례이고, 김소월의 ‘진달래꽃’(1924)이나 백석의 ‘사슴’(1936)처럼 작품만 수록된 경우가 세 번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어디에도 비평가의 ‘해설’이 붙은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 ‘문지’ 시선이 나오면서 해설이 일반화했다고 할 수 있다.

문지는 1권 황동규 시집부터 바로 해설을 달았고, 창비는 처음에 후기나 발문을 취했다가 나중에 해설로 돌아 그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아직도 그러한 전통에서 시인들은 자신의 시집에 대해 지인이 사적인 기억을 써주는 ‘발문’과 비평가가 작품을 분석하는 ‘해설’ 가운데 하나를 택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후자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시단에는 해설을 써야 하는 비평가가 많이 필요해졌고, 그러한 맥락에서 시인의 요청에 비평가가 일일이 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연한 인적 비대칭이 생겨나게 됐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당연히 시집 해설은 지난날의 서문, 발문 전통을 잇는다. 비판적 분석보다는 시집의 장점을 찾아 시인의 축제에 동참하는 일종의 따뜻한 협업인 셈이다. 원래 ‘비평’의 참뜻은 텍스트의 빛나는 부분을 찾아 그것을 논리적 언어로 객관화하는 것이다. 창작집 ‘해설’은 더더욱 장점의 발견과 그것을 통한 응원 내지 격려에 방점이 찍히게 마련이다. 그러니 호의적 해설을 두고 ‘주례사 비평’으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주례사’를 가장 생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해설의 임무일 것이다. 창작집 해설을 두고 비판 정신이 없는 글이라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거의 장르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집 해설은 비평가가 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청에 의해 주로 씌어진다. 그래서 비평가는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을 가려내고 그것을 하나의 논리적 글로 조직해야 한다. 그러니 비평가로서는 성실성과 논리력을 보여줘야 하고, 텍스트의 숨겨진 욕망과 논리의 결을 섬세하게 분석하고 시인도 몰랐던 작품의 속살까지 드러내줘야 한다. 어쩌면 해설의 제1독자이자 최종독자는 시인 스스로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단순한 과찬에는 냉담하게 되고, 자신의 시가 발화하는 속살까지 읽어준 경우라야 참다운 해설이라며 반긴다. 많은 독자가 해설을 통해 시집 이해에 도움을 얻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평가의 시선을 통해 시인 스스로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재발견하는 측면도 큰 것이다. 그 점에서 창작과 해설의 협업 관계가 이뤄지는 것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푸르른 것은 생명의 황금 나무다’라는 말은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이 말은 때때로 원의(原義)와는 달리 이론에 대한 의구심과 실천에 대한 숭배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를 해석하고 사유하는 틀로 여전히 우리의 관념과 의식을 구성해준다. 이론과 실천이 서로를 얽는 한 몸이란 말이다. 그 점에서 ‘해설’은 비평을 통해 창작에 한 걸음 다가가는 친화적 작업이다. 그때 이론의 바탕 위에 창작적 실천의 궤적을 새롭게 배열해가는 해설은 또 하나의 미학적 실천 행위가 될 것이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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