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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생태 보고서 담은 ‘반공 휴머니즘 영화의 모델’ [한국영화 100년]

입력 : 2019-05-07 06:00:00 수정 : 2019-05-06 20: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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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 / 경찰 선무 공작 중 모은 자료 바탕 제작 / 이강천 ‘반공 영화’ 효시 알리는 위치에 / “빨치산 영웅화”… 해방 첫 상영 취소 곡절 / 1950년대 중반 영화계 반공 논쟁 도화선 / 당시 남한사회, 관념화된 빨치산 필요 / 엔딩 장면 태극기는 관념적 이데올로기 / 성폭력 넘어 집단 성폭력 장면도 있지만 / 여성 빨치산 문제 언급 회피 놀랍기까지
겨울이 오고 있다. 지리산 골짜기, 점점 포위망은 좁혀오고, 휴전 후 남겨진 북한군 유격대는 더욱 깊숙이 험한 산세를 따라 움직인다.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은 죽음의 두려움과 굶주림 속에서 도피하는 전후 빨치산의 생태 보고서를 담고 있다.

 

영화 ‘피아골’ 주인공인 애란과 철수의 촬영 당시 모습. 이들의 뒤편에 이강천 감독(뒷줄 맨 왼쪽)이 보인다. 미술감독 출신인 이 감독은 현지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탁월한 영상미를 선보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빨치산’의 기억

한국영화사에서 빨치산의 기억을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수십 편의 전쟁영화들과 남북 이산의 아픔을 말하는 멜로드라마들, 북한 간첩을 다룬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지만, 1948년 여순사건(여수·순천사건)을 계기로 전쟁보다 더 치열하게 펼쳐졌던 북한 인민군 유격대의 게릴라 활동과 그들의 파국을 다룬 영화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피아골’과 더불어 ‘남부군’(정지영 감독, 1990)과 ‘태백산맥’(임권택 감독, 1994)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피아골’의 빨치산 이야기는 당시 전북도경의 공보주임이 선무공작 업무를 수행하던 중 모은 빨치산들의 실제 기록과 수기에서 추출해 ‘반공’의 프레임 속에 주조한 결과물이다.

이강천 감독은 데뷔작 ‘아리랑’(1953)으로 나운규의 ‘아리랑’(1926)을 6·25전쟁 당시 공산 치하를 배경으로 각색해 만듦으로써 이미 유사한 작업을 했었다. 미술감독으로 시작한 이강천의 이 영화 데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국내 최초의 노천 시사회를 열고, 시사회 반응이 좋아 당시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경무대 특별시사회를 진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뒤 정권의 호의를 얻어 ‘면제조치 1호 영화’라는 타이틀까지 달게 됐다.

‘아리랑’의 성공과 이어지는 ‘피아골’의 연출로 이강천은 나운규와 이규환의 ‘민족 저항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를 잇고 전후 ‘반공 휴머니즘 영화’의 효시를 알리는 중요한 영화사적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이강천 감독의 영화 ‘피아골’의 한 장면. 좀처럼 표면화되지 않는 빨치산의 존재를 시각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그 역사적 맥락보다는 점차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 개인의 잔학성과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반공영화 논란의 극점에서 본 ‘피아골’

한국영화사에서 꾸준히 “반공 휴머니즘 영화의 모델”로 평가받아 온 ‘피아골’의 시작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되기로 한 1955년 7월24일의 상황은 이러하다.

대대적인 선전 끝에 상영일이 되어 개봉을 고대하고 있던 국도극장 측은 시간이 됐는데도 도착하지 않는 필름에 애가 탄다. 당시 문교부와 내무부, 국방부가 ‘피아골’의 심의신청본에 대해 “반공영화로 간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내고 상영 허가를 취소한 것이다.

해방 후 최초로 상영 허가가 취소된 이 사건은 1950년대 중반 영화계에서 반공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찬반 논쟁을 살펴보면, 반공영화스럽지 않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피아골’이 남한의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오직 공산 빨치산만을 다루고 있으며 “적색 빨치산을 영웅화”했다고 비판한다.

다른 한편으로, ‘피아골’을 ‘진정한 반공영화’로 지지한 영화평론가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피아골’과 함께 김기영 감독의 ‘주검의 상자’(1955)도 비슷하게 반공영화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들 옹호론자는 영화 미학과 계몽성 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반공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몽적 목적이 클수록 “교과서와 같은 무미건조한 교훈”을 피하고 “보다 더 새로운 ‘타입’의 반공영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시각 정치…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

‘피아골’의 상영 허가 취소 사건은 결국 제작 측이 자발적으로 문제가 된 대사들을 삭제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산을 내려와 모래밭을 걷는 애란의 모습에 태극기의 이미지를 삽입해 일단락됐다. 하지만 미국의 한국학 학자이자 컬럼비아대 교수인 테오도르 휴즈가 예리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애란의 탈주와 태극기의 겹침은 이중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검열을 의식한 이 장면은 당시 반공주의의 균열과 이를 덮으려는 강박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피아골’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냉전체제의 세계관에서 빚어진 이분법적 에토스(관습)를 드러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피아골’은 이데올로기와 인간성의 대립이라는 놀랄 만한 명제를 만들어 내며, 그 시대상황에서 가장 멀리 나갈 수 있는 만큼 반공영화의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 낸 모델이 됐다. 빨치산 생태 보고서로서 ‘피아골’은 빨치산의 지워진 기억을 가시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후의 반공영화들이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을 괴물로,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타자화하는 것에 반해 적어도 ‘피아골’은 빨치산 집단이 갖는 실체적인 존재론을 보여준다. 이 집단에는 잔혹한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소년과 노인, 여성 빨치산들도 포함돼 있다. 다양한 존재들로 구성된 빨치산들은 가족을 그리워하고 배고픔에 힘들어하고 사랑에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이러한 균열적 이미지는 그대로 남겨 두어서는 곤란하다. 1950년대 남한 사회는 실체화된 빨치산이 아니라 관념화된 빨치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엔딩 장면의 태극기는 그 실체들 위에 덮인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펄럭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피아골’의 여성 캐릭터들과 성폭력의 흔적들은 이 영화를 젠더적 관점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젠더 관점으로 다시 보는 ‘피아골’

오늘날 다시 ‘피아골’을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영화에 표현된 젠더적 이야기들이다. 영화에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굵은 선의 이목구비와 거침없는 태도가 돋보이는 애란과 좀처럼 말이 없고 여성적인 소주가 그들이다.

두 여성은 많은 면에서 대비된다. 소주는 빨치산 대원들의 빨래를 담당하거나 지령에 온순히 복종한다. 반면 애란은 대장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여간부로서 두각을 드러내고, 애정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다. 애란이 철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장면이나 자신을 희롱하려는 아가리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반박하는 장면은 일말의 통쾌함마저 안겨 준다.

같은 맥락에서 다시 보는 ‘피아골’에서 가장 문제적인 장면은 1950년대 반공 논란에서는 무시됐던 성폭력 장면이다. 수많은 논자들이 이 영화의 빨치산 묘사에 대해 여러 입장을 냈음에도, 아무도 여성 빨치산이 겪는 폭력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특히 이 영화는 성폭력을 넘어 집단 성폭력의 문제를, 그리고 집단 성폭력을 넘어 시체 성애(네크로필리아)란 금기를 보여주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영화 ‘피아골’의 빨치산 대원 만수. 그는 소주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죄를 숨기기 위해 동료를 살해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소주는 빨치산 남성대원들의 성적 착취와 폭력에 여러 차례 노출된다. 권력형 성폭력과 전쟁 성폭력의 징후들을 모두 안고 있는 이 여성 캐릭터는 결국 지리산 깊은 숲에 버려지고 방치된다. 소주의 죽음 장면은 통렬하기 그지없다. 늦가을 숲속의 유난히 밝은 햇살과 대조되는 음지 속에 여성의 몸이 버려지고 잡목들로 가려진다. 어떤 목소리도 기억도 전하지 못한 채 하나의 몸이 사라지는 것이다. 폭력의 증거가 되는 하얀 속옷만이 강물을 따라 흘러서 다른 대원에게 발견되지만, 그 뒤로 영화의 극적 전개는 대원들 내부의 분열로만 더욱 치닫는다.

‘피아골’과 이를 둘러싼 논쟁들은 이념 대립의 틀 속에서 그 시대가 갖고 있던 인식적 범위와 한계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기억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새로운 시선과 연결하는 건 고전영화를 바라보는 동시대 관객의 몫일 것이다.

박현선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CGSI)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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