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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슬퍼하고… 나한상 표정서 내 삶을 읽다

입력 : 2019-05-01 10:00:00 수정 : 2019-04-30 21: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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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회 / 투박한 화강암에 희로애락의 감정 담겨 / 은은한 미소 띤 채 뭔가 말을 건네는 듯 / 기막힌 옛 장인들 솜씨에 절로 탄성이 / 춘천박물관선 ‘나한과 현대의 만남展’ / 과거·현재·미래 이어온 인간愛부터 /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 작품까지 다양 / 아이들 천진한 그림엔 저절로 ‘빙그레’
“저는 우리의 마음을 닮은 오백나한의 다양한 표정들을 감상하면서, 저 자신의 평소 표정은 어떤지, 그리고 친구들이 자주 짓는 표정은 어떤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나한상의 다양한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벗이라는 것을 표현하여…” 춘천의 호반초등학교 4학년 전예은양이 자기 그림에 ‘나한상:우리, 벗’이라는 제목을 단 이유다. ‘창령사터 오백나한’의 매력은 아이의 눈으로 봐도 그런 것이었나 보다. 나한상은 말을 걸어온다. 내용이야 제각각이겠으나 예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나한상 각각의 표정 때문일 것이다. 성스러운 존재이나 속세를 살았던 나한은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얼굴을 하고 있다. 창령사터의 나한을 보며 ‘굳이’ 그것에 얽힌 역사와 종교적 의미를 알려고 들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저마다의 표정이 담고 있는 인생의 양상을 읽어 보고, 그것이 어떤 말을 건네는지를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회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말을 걸어오는 나한상, 나를 돌아보다

나한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다.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신에 근접했으나 본질적으로 인간이다. 그래서 나한은 “내 안에 존재하는 깨달은 자이고, 깨달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다. 깨달은 삶이란 “저 멀리 아득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진하게 웃고, 좀 더 느긋하게 진지하고, 좀 더 여유 있게 인상 쓰고, 좀 더 편안하게 슬플 수 있는” 태도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표정을 가진 창령사터 오백나한상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회에 출품된 나한상 88점을 마주하면 ‘천진한 웃음’이 가장 두드러진다.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가르친 것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완성된 진리에 예배하고 얻게 될 행복’의 구체적 형태가 나한상들의 미소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보주를 든 나한’, ‘바위 뒤에 앉은 나한’의 미소는 선한 눈매와 어울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단단하고, 투박한 화강암의 어디에 이런 미소가 담겨 있었던 것인지, 돌을 다듬은 장인의 솜씨가 기막히다. 각각 백제와 신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꼽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 얼굴무늬수막새의 미소와 견줘보는 재미를 누려도 좋겠다. 창령사터 나한상은 ‘강원의 미소’로 불린다.

분노와 슬픔을 표현한 나한상은 그것에 휘둘리기보다는 이런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듯한 모습이다. 앙다문 입과 내려감은 눈으로 표현된 표정,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인 형태가 깊은 성찰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나한상 29점과 700여개의 스피커를 탑처럼 쌓아올린 김승영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도 볼 만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도심의 수많은 소리 속에서도 나한은 “오랜 시간 잊고 지내온 나의 내면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주를 든 나한상’의 미소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창령사터 오백나한상은 ‘강원의 미소’로 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나한상, 시간을 잇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국립춘천박물관이 지난해 열었던 전시를 가져온 것이다. 큰 호응으로 기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던 지방의 전시를 서울로 옮겨와 더 많은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위한 것이다. 나한상을 내어준 국립춘천박물관은 그것의 현대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새겨보는 전시회를 아트인강원과 함께 열고 있다. 26일까지 열리는 ‘창령사터 오백나한 현대미술과 만난 미소’전이다. 나한상의 현대적 계승, 발전을 모색하는 동시에 참여한 26명의 강원 지역 작가들이 나한상에게서 받은 감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이종봉 작가는 ‘꿈꾸는 나한’을 통해 시간을 잇는 인간애를 표현했다. 그는 “오백나한상은 낮은 자의 시선에서 서민적 형상으로 다듬어져 그 의미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며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표정과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인간애를 만났다”고 고백했다. 이희숙 작가는 ‘삶 속의 나한’을 통해 “나한상에 나와 이웃들의 삶을 투영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명숙 작가의 ‘Arhat in Soul Garden’. 나한상을 프린트한 섬유를 바느질 작업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나한상을 소재로 한 어린이들의 그림 14점도 눈길을 끈다. 그림에는 나한상을 보는 아이들 나름의 생각들이 반짝인다. ‘나한상과 함께 하는 숨바꼭질’(양윤진 춘천삼육초 2학년)은 ‘바위 뒤에 앉은 나한’을 모티브로 했다. 봄날 아이와 나한상이 함께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모든 것을 받아주셨던 할아버지와 함께 노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나한의 탄생’(양유진 성림초 6학년)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했다. 나한상이 수 백년간 땅속에 묻혀 있었던 사실이 안타까워 “이제는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어린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기만 하다.

국립춘천박물관 김성태 관장은 “나한상이 가진 예술성이 작가들에게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며 “참여 작가들이 먼저 제안해 열리게 된 전시회다. 강원 지역에서 나한상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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