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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 치료 교육서 필로폰 투약장면 틀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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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5 06:00:00 수정 : 2019-04-29 13: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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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먹방’을 틀어주는 격” / 마약사범 대상 약물치료 프로그램 실효성 의문 / 악물치료 이수자 "주입식 교육에 그쳐" / 마약사범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강사님, 이거 안 보면 안 되나요?”

 

지난달 서울남부보호관찰소에서 진행한 약물치료 프로그램에서 영상을 보던 중 한 여성 입소자는 이렇게 항의했다. 이 여성이 문제를 제기한 영상은 마약 중간판매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영화 ‘사생결단’(2006)이었다.

 

해당 영화는 적나라한 필로폰 투약 장면이 다수 포함된 작품이다. 당시 입소자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화 시청도 끝까지 계속됐다.

영화 ‘사생결단’ 스틸컷. MK픽처스 제공

당시 현장에서 함께 수강한 유명 래퍼 신동열(활동명 빌스택스)씨는 24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심각한 약물중독자는 주삿바늘만 봐도 심장이 벌렁대고 정신이 나간다고 하는데, 그런 영화를 틀어주는 게 정말 치료가 맞는지 이해가 안 갔다”며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먹방’을 보여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버닝썬 사태’를 계기로 범정부 차원의 마약범죄 집중단속이 진행 중인 가운데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이행되는 정부 약물치료 프로그램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신씨가 공개한 수강 경험은 이런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유명 래퍼 신동열(활동명 빌스택스)씨가 최근 유튜브(YouTube) 개인 채널에 게재한 영상에서 자신의 약물치료 수강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당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법원에서 40시간 약물치료 수강명령을 받은 신씨는 전체 수강시간 중 10시간가량이 영상 시청으로 채워졌다고 했다. ‘사생결단’ 외에 영화 ‘레퀴엠’(2000)과 마약류인 대마초, 코카인 등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당시 시청각 자료 목록이었다. 신씨는 “다큐멘터리도 단순 투약사범보다는 유통사범에 대해 다룬 내용이 많았다”며 “약물중독자 치료 목적이라 보긴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윤현준 서강대 인사랑연구소 중독사업본부장은 “마약사범은 초범이라도 항상 재발 위험을 곁에 안고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며 “‘사생결단’은 그 영화로서의 작품성과 별개로, 이미 마약을 접한 사람에게 치료용으로 활용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오히려 재범을 독려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약물치료와 함께 준법운전 강의, 가정폭력 치료, 성폭력 치료 목적으로 운영 중인 각종 수강명령은 그 대상자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수강명령 횟수는 2013년 2만8568건, 2014년 3만4884건, 2015년 3만9084건, 2016년 4만3930건, 2017년 5만1749건이었다. 올해 정부가 마약사범 집중단속에 나서면서 약물치료 수강 대상자는 더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찰은 지난 2월 말부터 한 달간 마약사범 511명을 잡아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마약사범 수가 느는 만큼 약물중독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정부 약물치료의 질 제고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수준 미달이라는 지적이 많다. 신씨는 “정부 프로그램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그친다”고 말했다. 인사랑연구소의 윤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수강명령 시간 자체가 짧은 편”이라며 “미국은 개인에 따라 100시간도 수강명령을 내려 전문가의 개입 기회를 충분히 준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마약사범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정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팀장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마약사범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보기보다는 단속과 처벌만이 능사인 범죄자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검찰 기소 단계부터 마약사범에게 입원 치료를 강제하는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등의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수강명령 집행 담당 부처인 법무부 관계자는 “약물치료 프로그램 종료 후 수강생 대상으로 강사 평가를 받아 문제가 지적된 부분에 대해선 조정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문제를 제기한 영상 시청에 대해선 “강사가 수강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단서로 영화 등 영상을 활용한다”며 “신씨가 지적한 상황의 경우, 그 영상 활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 수강생 개인의 취약점이 드러나는 과정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강사가 그 반응에 대해 수강생 전체와 논의, 토론함으로써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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