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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최초 충무공 동상 제작 이진수옹에 67년만에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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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5 06:00:00 수정 : 2019-04-24 17: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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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동상하면 서울 광화문이 먼저 떠오르지만 경남 창원에 있는 충무공 동상이 사실은 ‘원조’다.

 

24일 해군에 따르면 현재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충무공 동상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앞선 주물 기술을 보유했던 해군 조함창(현 해군 정비창)이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1952년 4월에 제막한 동상으로서 대형 충무공 동상의 효시가 됐다.

 

당시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이진수(95·사진) 옹은 1949년 해군 조함창에 주물 군속(현 군무원)으로 임용돼 이 동상 제작에 참여한 장본인이다.

1952년 3월28일 국내최초의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을 완료한 해군 조함창 대원들이 찍은 기념사진. 파란색 원 안이 이진수 옹. 사진 오른쪽에는 ‘해군공창(조함창) 주조공장 일동’, 왼쪽에는 ‘임진 삼월 대충무공 건립기념’이라고 적혀있다. 해군 제공

이 동상의 제작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해군 내부에서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로 시작됐다. 이후 마산시장을 중심으로 동상건립기성회가 결성됐고,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은 물론 놋그릇 등 기부품도 내놨다. 제작은 당시 대규모 동상을 제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관인 조함창이 맡았다.

 

충무공 동상은 높이 482cm, 너비 140cm로, 제작 당시만해도 국내 최대 규모였다. 서울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 제작보다 16년이 빨랐다.

 

이진수 옹은 “나를 포함해서 10여명의 대원들이 4개월 이상 주형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동상을 만들었다”며 “우리 손으로 만든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4일 이진수 옹이 본인이 제작에 참여했던 충무공 동상 축소모형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해군은 오는 28일 충무공 탄신 제474주년을 맞아 이날 이진수 옹에게 동상 제작과 충무공 정신을 선양한 공로로 뒤늦은 감사패를 수여했다.

24일 박정일 금속직장장(앞줄 오른쪽)을 비롯한 정비창 대원들이 이진수 옹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해군 정비창을 대표해 감사패를 전달한 박정일 금속직장장은 “이진수 옹을 비롯한 선배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건립한 충무공 동상은 해군 정비창의 자부심이자 해군의 자랑”이라며 “충무공 탄신일을 앞두고 선배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따르고자 감사패를 수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4일 해군 군수사령부 장병들이 경남 창원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24일 해군 군수사령부 장병들이 경남 창원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 앞에서 충무공의 최초 해전인 옥포해전을 비롯한 23개의 해전명과 ‘필생즉사, 필사즉생’ 이 적힌 종이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편 그의 차남 이치관 주무관(58)도 25년째 해군 군수사령부 정비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아버지께서는 해군과 정비창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말씀하셨고, 동상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했다”며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해군 정비 군무원 후배로서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사진=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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