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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주기 산업화시대에 머문 백년대계 이젠 틀 바꿔야”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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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4 06:00:00 수정 : 2019-04-23 22: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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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 2000년대 기점으로 학생 대변혁 경험 / 과거의 교육시스템 되레 미래만 억압 / 4차산업혁명에 맞는 새모델 만들어야 / 국가교육위, 교육부 ‘옥상옥’ 지적 기우 / 교육주체 힘모아 6월 입법완료 추진 / 10월 개최 교육콘퍼런스에 큰 기대

“2000년대를 기점으로 아이들이 질적으로 변화했다. 변화 이전에 만들어진 교육시스템으론 도저히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교육 백년대계’ 시대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인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을 설명하던 차였다. 어떤 점이 바뀌었다는 걸까. 또 왜 2000년대일까.

김 의장은 2000년대부터 학생들이 ‘권위를 수용할 수 없는 세대’로 탈바꿈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나름의 추적연구를 통해 ‘문신’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5000년 전만 해도 문신을 신성시했지만 3000년 전 농경 국가가 형성되면서 문신이 노예나 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등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졌고, 오늘날 산업화세대까지 그 흐름이 이어졌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다시 문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나타나는 문화사적 대변혁이 생긴 것이다. 그는 “문신은 정신 가치와 몸의 가치 사이 균형을 상징한다. 산업화세대가 문신을 꺼리는 건 몸보다 정신의 가치를 높게 생각해서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저울의 기울기가 반대로 바뀌었다. 국가교육시스템에서 공교육은 국민이 교원에게 교육권을 위임한다. 교원이 공교육의 ‘정신’, 학생이 ‘몸’이다. 대변혁을 거친 지금의 학생들이 이런 체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의장은 “아이들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 뒤 학교 교육이 오히려 미래를 억압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압의 강도가 더 세진 셈이다. 정말 참혹한 느낌이 들더라”라며 국가교육위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달 25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고, 당·정·청은 법안을 6월까지 통과시켜 올해 안에 국가교육위를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음은 김 의장과의 일문일답.

―국가교육위는 왜 필요한가.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산업화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한마디로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였다. 우리나라에 맞는 교육정책을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주로 미국 교육정책 모델을 가지고 왔다. 학자들이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필요한 정책을 관료들이 연구 발제하면 미국 것을 손봐서 내려보내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한국은 또 4차 산업혁명의 방향으로 굉장히 빠른 진전을 보이는 사회다. 산업화시대처럼 따라갈 수 있는 선진국 모델이 사라졌다.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독자적인 교육정책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그렇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교육정책이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나라가 발전하면서 더는 미국 유학파 전문가와 관료들이 정책을 만들어 내려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 관료들의 실패한 정책들, 정치권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등 이 전체를 연결해 지혜를 모아 길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교육위가 필요한 이유다.”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문제의식이 국가교육위의 출발점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지금 교육정책은 사실상 5년 주기인데 이는 산업화시대 주기와 맞물린다. 박정희 시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교육은 경제개발의 강력한 수단이었다. 아무런 자원도 없는 한국에서 질 높은 노동력을 생산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봤다. 그래서 선진국 모델을 빠르게 쫓아가기 위해 ‘수입한 지식’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한테 암기하게 했다. 사실상 학생들을 교육공학적 조작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아이들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볼 때 어떤 문제가 생기나.

“1995년 시작된 김영삼정부의 5·31 교육개혁이 나온 당시 우리 사회는 이른바 ‘지식정보사회’로 전환됐다. 더는 주입암기식 능력으로는 적응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아이들의 통합적 사고력, 창의적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그때 묘하게도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만들어졌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기가 5년 단임제 도입으로 그대로 이어지면서 교육시스템이 산업화시대에 갇혀버렸다. 그 주기를 적어도 10년 이상으로 늘려야 아이들에게 통합적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30년 넘게 문제의식과 시스템이 충돌하는 ‘자기모순’이 누적되면서 현장의 교사들도 너무 힘겨워하고 있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으론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체감하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와 교육부의 역할이 겹쳐 ‘옥상옥’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사실상 기우라고 본다. 섞으려 해도 섞이지 않는다. ‘속도’ 자체가 다르다. 국가교육위는 중장기 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곳이라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반면 교육부는 수립된 중장기 정책을 토대로 단기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게 돼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중장기 정책은 다원화된 주체들을 한데 모아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합의한 주체가 다양할수록 정책 지속성이 길어져서다.”

―민선 자치가 부활한 지 올해로 24년을 맞았다. 교육감도 직선제가 도입됐다. 이미 교육자치가 시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교육감의 경우 직선제만 도입됐지, 실질적 권한은 내려오질 않았다. 또 권한이 내려온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지금 아이들은 1990년대 이후 질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이 아이들을 감당하려면 지역과 학교가 밀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정부서울청사 의장실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분야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면서 국가교육위원회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아이들이 질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다는 건가.

“지금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 형성에 애를 먹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러 정책 속에서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그런 문제가 나타났다고 본다. 현장에서 보면 금방 안다. 당시 주의력결핍 과잉장애(ADHD)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며 전염병처럼 번졌다. 그런데 ADHD는 생물학적으로 발현되는 거라서 ‘번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현장에서 ADHD라고 여겼던 건, 아이들이 겪고 있던 정체성 혼란이었다. 그때부터 학교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10%도 채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와 지역을 결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순환보직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담당자들 임기가 1년6개월 정도라 지역 단위와 결합될 수가 없다. 교육감 직선제가 됐다고 교육 자치가 되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하는데, 정치권 상황이 복잡하다.

“지난달에 조 의원이 국가교육위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 발의까지도 여권 내부에서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불발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마다 교육 주체들을 한데 모았다. 지난 1월24일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시교협)와 합동으로 신년간담회를 개최해 국가교육위 설립 취지에 공감하는 합의문을 냈다. 그 다음달(2월28일)에는 국회에서 대학교육협의회, 전문대학교육협의회 등까지 포함한 16개 교육단체가 공동으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교육계의 의지를 한데 모아 표명한 것이다. 적어도 교육에 관심을 갖는 모든 주체가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1차 목표는 오는 6월까지 법이 통과시키고 연내에 출범하는 것이다. 1차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또 나름의 방안이 있다.”

―어떤 방안을 말하는 건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육계의 의지를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사는 올해 10월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육콘퍼런스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새로운 2030 교육체제 수립을 위해 한국 교육체제 전반을 재점검하고 방향 설정을 논의하는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행사다. 특히 이번엔 ‘OECD 교육 2030 워킹그룹 회의’를 유치해 행사에 연계했다. 워킹그룹 회의는 OECD 30여개국이 참가하는 ‘교육 2030 프로젝트’ 정례회의다. 행사를 통해 국가교육위 출범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면 정치권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대담=김기동 사회부장

 

정리=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충남 당진(1953년) ●대전고 ●서울대 국어교육 학사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한성·우신·양정고 교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중국 쑤저우대학 초빙교수 ●국가교육회의 기획단장 ●국가교육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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