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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브렉시트가 드러낸 ‘문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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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2 23:38:00 수정 : 2019-04-22 23: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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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대립에 ‘결정 장애’ 늪 허우적 / 2019년의 英 ‘바보야, 문제는 문화야’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다는 ‘브렉시트’(Brexit) 결정을 내렸다. 그러고서 3년이 흘렀지만 영국 의회는 심각한 분열로 탈퇴안 비준에 반복적으로 실패하면서 이번 달 유럽에 시간을 더 달라고 구걸했다. 영국은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이지만 유독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결정 장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치에서 브렉시트는 경제보다는 문화 정체성이 대립하는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 경제란 이익을 합리적으로 따지므로 타협도 가능하고 절충도 빈번하다. 물건 가격을 흥정해 본 사람은 이런 진리를 잘 안다. 하지만 가치와 정체성이 충돌할 때 타협이나 절충은 어렵다. 종교나 정치색이 다른 사람이 서로 조정이나 협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사람은 영국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빈곤·이민·난민 등 영국의 불행은 유럽의 간섭 때문이며, 영국이 유럽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인식이다. 16세기 유럽의 교황을 부정하는 헨리8세의 종교 독립으로 영국이 국가 번영을 일구었듯이, 21세기도 브렉시트의 ‘마이웨이’가 화려한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 영국교회(성공회) 신도 가운데 브렉시트 지지자는 3분의 2의 절대다수로 국민투표의 52% 평균을 크게 웃돈다.

영국에는 잉글랜드 민족주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북부에는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있고, 바다 건너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도 있다. 스코틀랜드는 66%, 북아일랜드는 55.8%가 유럽 잔류를 선택했다. 이들 소수 민족은 유럽이라는 큰 틀 안에서 더 안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소수인 이민 출신 영국인이나 개방적 성향의 젊은이도 영국이 유럽에 남길 원한다. 이들은 다문화 사회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영국 민족주의의 폐쇄성을 두려워 하는 집단이다.

2017년 총선을 두고 미국식 ‘문화전쟁’이 영국에도 상륙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정치는 1970년대만 해도 부자의 공화당과 노동자의 민주당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가치관에 따라 대립하는 문화전쟁의 정치구조로 점차 대체됐다. 신, 총기, 동성애가 사회를 보수와 개방의 진영으로 나누는 기준으로 등장했다. 가치의 문화전쟁이 이익의 계급정치를 밀어낸 것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에서도 정치의 전선을 계급에서 가치로 이동시켰다. 미국의 블루칼라가 트럼프를 지지하듯 영국도 이제 지방이나 농촌의 민족주의 노동계층이 보수당을 지지한다. 다른 한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도시의 부자들이 노동당에 투표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노동당의 리더 제러미 코빈은 마르크스주의자지만 노동당 지지층은 혁명을 꿈꾸는 노동계급보단 다문화 사고를 가진 도시의 자유주의자들이다.

아이러니의 극치는 재계가 점점 노동당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관점에서 브렉시트는 영국에 엄청난 손해를 끼칠 명백한 자해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당의 민족주의자들은 유럽과 관계를 끊어버리는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며 심지어 ‘노딜 브렉시트’까지 불사하겠다고 난리다. 적어도 2019년 영국 정치에서는 ‘바보야, 문제는 문화’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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