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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드릴게요”… ‘가짜 코인’의 검은 유혹

입력 : 2019-04-20 14:00:00 수정 : 2019-04-20 13: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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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지대 변한 가상화폐 거래소 / 누구나 ‘간판’… 사기 횡행 / 사전·이중판매 등 ‘닥치고 꼼수’ 판쳐 / 코인 거래 뒤 록 걸어 투자자금 묶어 / “블록체인 아닌 포인트 불과” 지적도 / 정부 손 놓은지 벌써 1년 / 금융사 아니라 거래 신고의무 없어 / 가상화폐 거래소 200개 난립 추정 / “정부 인증 시스템 전무… 대책 시급”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투자자들의 가상화폐 거래를 임의로 차단하거나 정체 모를 가상화폐를 만들어 자금을 모집하는 등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채고 있어요.”

한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에 참여한 김진호(가명)씨가 지난 16일 세계일보와 만나 전한 내용이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규제 무풍지대에서 현재 최대 200개 정도로 추정될 만큼 급증하고 사기가 판을 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상승하던 지난해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를 ‘도박’이라 정의하며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을 무색하게 한다. 이후 가상화폐 폭락으로 정부와 사회적 관심이 멀어진 틈을 타 가상화폐 시장이 ‘무법지대’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 설립의 시작은 ‘자체 가상화폐’ 만들어 투자금 모집

지난해 10월 사이버 보안 컨설팅업체 A사가 추진한 B가상화폐 거래소 설립과정에 참여했던 김씨에 따르면, A사가 B거래소를 설립할 때 들인 자본금은 단돈 1000만원이었다. B거래소는 거래소에 필요한 자금을 형성하기 위해 ‘C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김씨가 B거래소에서 맡은 주 업무는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통해 C코인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김씨는 B거래소의 마케팅 회사인 ‘D파트너스’를 만들어 홍보와 코인 판매 업무를 전담했다. D파트너스는 “코인을 사면 거래소에서 발생한 수수료 100%를 배당받을 수 있고 가상화폐 상장 시 에어드랍(가상화폐 일부를 배분) 혜택 등이 있다”고 홍보해 투자자 수백명을 끌어모았다.

국내에선 가상화폐를 시장에 발행하는 ICO(가상화폐공개)를 금지하고 있지만, B거래소는 마치 가능한 것처럼 ‘사전판매(프리세일)’라는 명목으로 가상화폐를 발행해 판매했다. ICO에 대한 구체적 규제안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코인 판매과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B거래소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코인을 지난 1월 5일부터 20일까지 개당 0.5원, 연이어 30일까지 개당 0.55원에 사전판매한다고 공지했지만 오프라인이나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접촉한 이들에는 개당 0.3~0.4원에 판매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공식루트가 아닌 곳에서 이중판매를 한 셈이다. 그는 “D파트너스가 가상화폐 판매대행사에 C코인을 개당 0.3원에 줬고 대행사는 거래소 공식 판매가인 개당 0.5원보다 싸게 팔아도 커미션(인센티브)이 남기 때문에 0.3~0.4원 수준으로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B거래소가 사전판매 중 코인 판매량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B거래소는 코인 사전판매 당시 70억개를 완판했다고 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거래소가 게이지를 조작한 것”이다. (정해진 수량이) 다 팔리면 40억개가량이지만 실제 팔린 건 25억개뿐이었다”며 “판매 수량을 부풀려 투자자를 현혹하면서 더 사게 하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으로 코인을 판 B거래소는 자금 70여억원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에 갇혀버린 투자자 돈… 업계선 ‘노다지 시장’ 비아냥도

B거래소는 얼마 전 공식 오픈 뒤 코인 거래에 잠금(록)을 걸어 투자자가 배당받은 코인을 바로 팔지 못하게 해버렸다. 또 코인을 개당 최소 1원 이하로 팔 수 없도록 설정했다. 당초 0.5원에 팔던 코인을 1원에 사려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투자자들이 투자한 수십억원은 사실상 거래소에 묶인 돈이 됐다. 투자자들은 법적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C코인 2000만원어치를 샀다는 이상훈(가명)씨는 통화에서 “코인거래를 못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1000만원을 투자한 박종철(가명)씨도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일각에선 C코인이 실제 블록체인기술로 탄생한 가상화폐가 아니라 숫자만 표시되는 ‘사이버 포인트’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해당 코인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C코인은 블록체인이 아니고 포인트”라며 “진짜 가상화폐는 거래소에서 마음대로 입출금을 할 수가 없는데 B거래소는 그리 하고 있는 데다 이더리움 기반의 코인들은 ‘이더스캔’이라는 지갑에서 투명하게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지만 C코인은 확인이 안 된다. 사실상 블록체인 기술력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일보는 관련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A사와 B거래소 대표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정부가 가상화폐 손 놓은 지 1년… 거래소 인증 시스템은 전무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150~200개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로 불리는 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형 규모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거래는 가상화폐가 가진 고유 주소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자금 추적이 쉽지 않고 ‘금융실명거래법’상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거래 신고의무가 없다. B거래소처럼 누구나 법인을 세우고 시스템만 갖추면 가상화폐 거래소 간판을 내걸고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기자가 가상화폐 정보를 공유하는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해보니 하루에 수십 건의 가상화폐 거래소 소개 글이 올랐다. 이 중에는 가상화폐 외피를 두른 다단계 금융사기와 연관된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내용을 모른 채 피해를 당하는 투자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지만 방지책이 마땅치 않은 상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재작년 말에 가상화폐가 통화냐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결국 국무조정실이 가상화폐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적이 있다”며 “현재도 마찬가지라 가상화폐 관련 건은 거의 수사기관에서 맡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이를 인증하기 위해 일부 국내 오픈하는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자율규제심사를 진행했다”며 “현재는 금융거래를 위한 법인만 등록하면 누구나 거래소를 차릴 수 있는데 정부가 거래소를 인증하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2월 가상화폐가 불법거래에 악용되지 않도록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금융회사에 준하는 조치를 요구하도록 가상화폐 관련 국제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지난해 3월 가상화폐 거래소에 금융회사와 동일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및 FIU(금융정보분석원)에 대한 신고 의무, 추가적인 내부통제 의무 등을 부과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병욱 의원도 지난 3월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에 대한 신고의무를 강조한 특금법을 발의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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