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묻지마식 방화·살인 난동으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피의자는 과거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는 남성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자로 인한 연이은 범죄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건당국의 관리와 정부 대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범행 징조가 수차 있었는데도 경찰 등 공권력이 안이하게 대처해 참변을 사전에 막을 기회를 날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4층에 사는 안모(42)씨는 이날 오전 4시25분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황모(74)·김모(64·여)·이모(56·여)씨와 최모(18)·금모(11)양 5명이 숨졌다. 노인·여성·아이 등 모두 사회적 약자였다. 또 6명은 흉기에 상처를 입었고 7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안씨는 “누군가 사람을 찌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 끝에 오전 4시50분쯤 현장에서 검거됐다. 그는 “임금체불 때문에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안씨가 10여년 전부터 조현병을 앓아 온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다.
누나를 잃은 유가족 이창영씨는 “아파트 주민들이 오랜 시간 피의자의 위협적인 행동을 경찰과 파출소에 수차례 신고했는데 관계 기관의 조치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관할 동사무소, 임대주택 관리소에도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때마다 묵살당했다”며 “국가기관이 방치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이희석 진주경찰서장도 언론브리핑에서 “올해만 안씨 관련 신고가 5건 접수됐었다”며 “단순 시비로 봤다”고 밝혔다.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안씨의 정신병력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계도(啓導)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단한 소란’으로 가볍게 여겨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5건 중 4건은 안씨가 층간소음 문제 등으로 잦은 다툼이 있었던 윗집인 5층 주민의 신고였다. 윗집 살던 최양은 안씨에게 상습적인 위협을 당했고 결국 그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대구에서 20대 조현병 환자가 10대 남성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지난해 말 30대 조현병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살인 범행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비율은 2015년 7.5, 2016년 7.9, 2017년 8.5로 늘고 있다.
유사 범죄가 잇따르는 것은 환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력이 있는 안씨도 보건당국에 의해 관리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진료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중증정신질환 환자 중 지역사회 정신보건시설이나 재활기관에 등록한 비율은 2017년 기준 29.4%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이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그나마 재활시설 등도 수도권(51.3%)에 집중돼 있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정신의학과)는 “환자의 증상이 관리되면 행동에 문제가 없다”며 “치매 환자를 관리하는 것처럼 지역마다 정신보건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학)도 “지자체 등에서 조기에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이웃들에게 주기적으로 제보를 받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진경·김청윤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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