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이후 비핵화 논의 진전을 위한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대화의 동력을 되살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한 동맹 간 긴밀한 전략대화의 자리였다”고 했다.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도 했다. 북핵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게 문 대통령의 평가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현실 인식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의 중재안인 ‘굿 이너프 딜’이 미국의 빅딜 주장과 충돌해 회담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지 않았던가.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명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하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며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시점”이라고 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이견을 조정한 뒤 북·미 또는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톱다운 방식의 협상 로드맵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미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려야 할 문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미국은 ‘포괄적 합의-포괄적 이행’을, 북한은 ‘단계적 합의-단계적 이행’을 고수하는 것을 감안하면 절충점 모색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제재완화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제재해제 중심의 상응조치 요구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고무적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북·미 협상에서 교환할 콘텐츠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다른 상응조치를 제시할 여지가 생기고 우리 정부의 중재안도 유연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북한이 비핵화 대상·범위·시기를 명확히 밝히는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통큰 결단을 하도록 설득하는 일에 정부는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시각차를 좁히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비핵화 정의부터 꼼꼼히 재검토해 미국과의 이견을 불식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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